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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더하라)(벧후1:6) 경건에 형제 우애를 공급, 혹은 더하라고 한다...

by coixn  /  on Aug 29, 2010 19:29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더하라)(벧후1:6)

 

경건에 형제 우애를 공급, 혹은 더하라고 한다.

자신이 경건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경건의 모양은 무시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경건의 마음이 경건의 모양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건은 고상한 척 거룩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고상하고 거룩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믿을 때 생기는 태도이다.

여기서 형제우애는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 자매 사이의 사랑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들 안에서의 사랑이기 때문에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랑이다.

 

형제 우애 중에서 형제의 개념에 대하여 알아보고 두 번째로 우애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형제자매의 개념

 

형제자매라는 개념은 그냥 생긴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집에 있는 식구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 예수님을 믿고 그의 동생들은 서신서를 남긴다. 바로 야고보서와 유다서이다.

 

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더 중요시 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H라는 로고를 쓰는 제법 큰 기업에서 면접을 했다. 면접관이 입사지원자에게 H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회사가 생각나는지를 물었다. 나름 우수했던 지원자가 현대라고 대답을 했다. 그 지원자는 그냥 탈락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우수해도 그 지원자를 합격시켜 줄 리는 없다.

예수님의 말씀과 세상의 원칙 중에 어느 것을 우선으로 놓느냐는 우리의 진정한 주인과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3:4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5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이제부터는, 즉 지금도 아버지, 나의 청년 시절 보호자, 그리고 자신에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참고사항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리이자 원칙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나 지식은 참고할 만은 해도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는다.

 

16:13 (8:27-30; 9:18-21)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 혹은 위대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해도 예수님의 본성은 변화지 않는다. 예수님은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22장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일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 수 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2:1,2)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22:10-13)

 

아브라함은 첫 번째의 목소리를 하나님의 목소리로 알았고, 두 번째의 목소리도 하나님의 목소리로 알았다. 아브라함이 광신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사랑했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에 대하여 오해했던 가족들은 황당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말씀 도중에 예수님을 데리고 나올 수 없었다.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을 보내어 가족들이 왔다는 말을 전했다.

 

31(12:46-50; 8:19-2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그런데 예수님이 가족들을 무시하는 듯 한 말씀을 하셨다.

일어나서 나가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여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28:9,10)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2:11)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자녀들, 형제 자매답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심지어 심판의 조건 중에 이러한 것이 있다.

형제 자매들을 어떻게 대하는 가가 곧 예수님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25:45)

사도바울을 안수한 이는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바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바울에 대하여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9:13,14)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순종하기로 했다. 안수를 했을 뿐 아니라 사울을 형제로 대접을 했던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22:12,13)

 

2. 형제 우애 중에서 우애이다.

예수님에 의하여 형제자매된 자들은 사랑이 필요하다. 이것을 우애라고 표현했다.

형제 사랑이라고 표현을 해도 무방하다.

예수님이 새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런데 그 계명은 조금 독특하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4,35)

이 사랑은 최소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적어도 세 명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반드시 계시고 나와 너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없는 가운데서 나와 너의 관계는 의미가 없다.

이 사랑의 기준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서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을 체험했거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와 뜻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와 우리는 돈이나 물질 혹은 다른 목적을 이루는 관계가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이다. 그래서 이 관계는 가장 약할 수도 있고 가장 강한 관계일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의 관계를 지탱하는 끈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배제한 채 우리가 서로 주고 받는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우리들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동인(動因)이다.

왜 그렇다면 예수님은 사랑하라에 더하여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까?

다음 주에 생각해 보겠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원수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핍박하는 자들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시지 서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하지만 예수님을 아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서로 기도하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5:16)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라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특성상 받는 쪽 보다는 주는 쪽이 풍성해진다.

사랑이 오고 가지 않으면 사랑을 받는 쪽이 풍성해 지는 것이 아니라 피폐해 진다. 물이 받기만 하고 보내지 않으면 썩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주는 쪽과 받는 쪽 둘 중에 누가 풍성한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머니와 아이 중에서 누가 풍성한 가를 보면 아이 보다는 어머니가 풍족하다.

사랑을 많이 주어서 망하는 사람은 없다.

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사랑이야기를 하는데 웬 구제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구제는 구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6:38)

 

예수님은 사랑을 서로 주고 받으라고 하신다.

이것은 서로가 풍성해지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사랑을 주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과 요한일서 3:16은 하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을 알게 되었다.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은 우리가 받은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적게 주고 많은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항상 풍성하게 주고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먼저 알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깨달으라고 하신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은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이다.

 

결론적으로

형제우애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는 말씀이다.

형제 자매는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이 사랑은 예수님을 아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이사랑은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사랑할 수 있다.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한다는 고백이 증명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Me2day Yo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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