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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

by coixn  /  on Aug 18, 2010 22:20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26:14)

 

예수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핍박을 하던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단지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였을 뿐이었다.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핍박하던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5:38,39)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도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전제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그들은 소멸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만에 하나 사도들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가정을 했다면 사도들을 매질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예전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바로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 사이에 이런 논쟁이 다.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20:1-4)

산헤드린에 속하지도 않은 나사렛 사람이 성전에서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시비를 걸었다. 누가 당신의 뒤에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세례요한은 누구의 권위로 세례를 주었는지에 대하여 반문했다.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저희가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대답하되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0:5-8)

 

그들은 세례 요한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부터 왔음을 백성들은 인정하였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세례요한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진 것은 그가 백성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권위에 의문을 제기해도 섣불리 하지 못하는 것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무리들, 즉 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19:47,48)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4:21)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5:25,26)

 

만약 하나님의 일이라면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하는 일이나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세움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도들의 일과 대제사장과 서기관의 일은 구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고후1: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표준새번역]19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시며 동시에 "아니오"도 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만 있을 뿐입니다.

[현대인의성경]19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 전파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 했다가 "아니오" 하지 않고 언제나 ""라는 신실한 응답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계획은 이것 했다가 저것 했다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징은 일관성이시며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베드로의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이 증거라는 이유는 베드로와 사도들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라면 마땅히 사도들의 일을 지지해야 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12:30:11:23)

 

종교지도자들처럼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바울은 고난을 자초하고 있었다.

이 고난은 유익을 가져오는 고난이 아니라 파멸을 가져오는 고난이었다.

사울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 지도 몰랐다.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지만, 그 확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확신이었다.

이런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26:14)

 

예수님은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널리 알려진 속담과 같은 것으로 본래 의미는 '신을 대적하는 행동이 어리석고 무모하며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가시채'는 끝에 뾰족한 쇠나 뼈를 박은 채찍이다. 이 가시채는 밭을 갈 때 소나 말을 잘듣지 않으면 때리기 위한 것이다. 만약 매를 맞은 소가 반항하여 뒷발질을 하면 할수록 더욱 심하게 찔리고 상하여 고통을 당하게 된다.

소는 결국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10:2,3)

바울은 후에 자기가 로마서에서 말한 것 처럼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지만 그 열심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심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을 만족시키는 열심이었다.

 

열심이 있다는 것은 그 열심이 바른 방향으로 열심일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리더 중에서 최악인 것이 부지런하고 무지한 사람이다. 여기에다 잘못된 신념까지 더해지면 그 사람은 최악중의 최악이다.

소가 주인을 대적하여 열심히 가치채를 뒷발질하면 상하는 쪽은 주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가시채를 뒷발질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 바로 은혜이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42:1-6)

 

욥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는 결정적 증거는 자신의 재산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욥이 하나님께 대하여 알았다는 것이며 자신의 행동을 회개했다는 것이다.

회개는 잘못된 행동을 포함하여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은 모든 행동을 포함한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난 것은 그것을 멸망시키려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나타나셨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9:16)

 

바울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

바울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들도 은혜를 받았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10-13)

 

우리는 날 때 부터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안 자들이 아니었다.

우리들은 본래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근본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가시채를 뒷발질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라.

하나님의 일은 작은 것 하나에서 부터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Me2day Yo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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