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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

by coixn  /  on Aug 13, 2010 23:23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4:23)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성취하신다. 일이 완성을 하던 완성을 하지 않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확신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였다. 어떻게 도우실 지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문제였다.

 

느헤미야가 만약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니 열심히만 하라고 했다면 그 말은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앞장서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성벽 재건 공사에 앞장을 섰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따랐고 백성들은 느헤미야를 따랐다. 백성들이 바라보아야 할 이는 느헤미야가 아니라 느헤미야가 가리키는 하나님이였다.

느헤미야의 열심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좇는 사람이었다.

오늘의 본문의 느헤미야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의 리더십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다. 물론 그의 리더십은 훌륭하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리더십 등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알기 위함이며 예수님에 대하여 알기 위함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느헤미야가 가리키는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출애굽때 사람들은 모세를 따랐다. 그 모세는 하나님을 따랐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13:21,22)

위대한 성군인 다윗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따랐다. 그 다윗은 하나님을 따랐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위대한 사람들은 소개하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따랐다. 우리가 따라야 할 이도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시다.

 

요한복음 5장에는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이 나온다.

병자를 고친 것은 안식일 날이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5:16-19)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말씀하셨다.

자신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을 하시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좇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신이 정하신 계명을 깨뜨리시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것은 사랑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중심에 없고 사람이 중심에 없는 계명을 주신 일은 없다.

안식일은 무조건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안 에서 쉬는 것이다. 하나님을 본받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쉬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은 도리어 안식일에 악을 저지르고 있음을 알아야 했다.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3:1-5)

예수님이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고자 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궁리는 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지 사람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왜 그날을 주신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망각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다른 안식일에 호세아서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12:7)

아무리 좋은 계명이라도 사랑이 없는 것은 재고를 해 봐야 한다. 그것을 내가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고상한 목적이 있다면 고상하게 달성을 해야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은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기술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불과하다. 살인마에게 칼은 죽이는 도구이지만, 일류 요리사에게 칼은 음식을 제공하는 소중한 도구이다.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계명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잣대일 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알고 있다는 한 사람을 만났다.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10:25-29)

그 율법사의 이웃은 같은 율법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자기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패거리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자기의 이웃이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10:36-37)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의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좇았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왕하1:2-4)

다른 신에게 의지하고 다른 방법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성벽재건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그가 하나님을 좇아야 함은 자명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좇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좇아야 한다. 하나님을 좇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같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알라고 말을 한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살아계신 분으로, 지금도 우리들을 돕고 계신 분으로 알라고 한다.

딤전 3:15 만일 내가 곧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되더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어떤 사람을 직분에 맡게 선택할 것인가를 그대에게 알려 주고자 해서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의 터전이며 또 그 진리를 높이 선양해야 하는 곳입니다. 16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해답은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성령께서 그분의 흠 없고 순결함을 입증하셨으며 천사들에게 섬김을 받으셨고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 온 세상 사람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고 다시 하늘의 영광에 싸여 승천하셨습니다. (현대어 성경)

성경은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느헤미야가 따른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일치한다.

예수님의 많은 것은 하나님의 것과 일치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과 같았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8,9)

 

또한 아버지를 공경하는 자는 아들 또한 공경을 한다.(공경:높이 평가하다. 가치를 두다)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2,23)

모세가 처음 만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밝혔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3:13,14)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이렇게 밝히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하시니(8:58)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함이며 그리스도를 알기 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기 위함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함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시다.

시편 23편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에 관한 것도 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1-6)

Me2day Yo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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