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대상13:7,8)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올리고자 했다.
그는 모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궤가 있는 장소에 가서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나왔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참으로 보기에 좋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곧 하나님의 진노가 이어졌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다.
다윗은 혼란에 빠졌지만 말씀을 통하여 무엇이 잘못인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 하면서 하나님께 기뻐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을 율법이라고도 하고 말씀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기분이 나는 대로 섬긴다고 해서 섬김을 받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행17:25)
하나님이 우리들의 섬김을 받는 것은 우리들을 사랑해서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피조물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도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다음의 말들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 같으나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호6:1-4)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살릴 것이며 우리들의 해야 하는 것은 여호와를 힘써 아는 것이다.
성경의 흐름을 알고 하나님을 안다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의 반응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그들은 행동을 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시는가를 그들은 생각해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는 하나님의 죄사함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의 용서는 누군가의 죽음을 필요로 했다.
죄를 지은 자가 반드시 받아야 하는 댓가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죄인이 죄인을 위하여 죽을 수는 없다. 죄인이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죄가 없는 의인이 필요로 했다.
성경에서는 누군가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피, 즉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함을 말한다.
이것은 죄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죄라는 것을 단순히 생각하면 잘못된 습관이나 관습 정도로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반항이며 거부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데 있다. 단순히 동산의 열매를 하나 따먹었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아담과 하와의 잘못은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말씀은 하나이다. 우리의 언행일치로 생각을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들의 죄가 아담과 하와와 비교하여 무거울 수도 있고 가벼울 수도 있으나 근본이 하나님을 무시한다면 모든 것이 죄이다. 하나님을 만홀히 (업신여김, 갈6:7)여김을 받지 않는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에게 그러하셨듯이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대신 나 스스로 죄를 용서 받을 수 없으니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희생해야 했다. 죄는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죽어야 한다. 그것을 희생제물이라고 부른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피, 즉 생명이 사함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구약사람들은 황소와 염소등의 피를 드렸다. 달리 말하면 황소와 염소를 자기의 죄을 대신하여 죽였다.
하지만, 황소와 염소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그림자였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10: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3,14)
로마서 3장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들을 어떻게 용서하셨는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3-26)
하나님의 용서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피 즉 예수님의 희생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희생이 없다면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를 우리는 보혈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의 피가 모든 황소와 염소를 합한 것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피를 수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무한대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생 지을 죄를 사할 능력도 있다.
로마서 6장은 이것을 간단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죄의 댓가는 사망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주셨음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오는 것은,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들을 용납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즉 믿음으로 나올 때 밖에 없다.
호세아서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행위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해야 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4:2)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롬4:4)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종교행위를 할 때에도 해당이 된다.
금식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이나 금식의 행위만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기도를 하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기도의 행위만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월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슥7:3-6)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사58:3)
금식을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함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을 먹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금식은 하나님 한 분 만으로 사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지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금식은 사람들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16-18)
우리가 보아야 하는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이는 눈에 보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을 하는 환경이나 상태가 아니라 은밀하게 우리들을 주시하시고 우리들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을 무시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속히 그의 능력을 보이시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참으심과 그리스도 때문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오늘의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자 했음에도 일어 어긋난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했다.
다윗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민4:15)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케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대상15:12-15)
다윗이 그러했듯이 우리들이 먼저 물어야 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우리가 말씀을 보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 속에서 펼쳐지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다.
신앙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윗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했으나 자기의 뜻대로 했을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그후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우리가 나가고 싶다고 나가고 나가기 싫다고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들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규칙이다. 운동경기에 규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의 규칙이 바로 말씀이다. 규칙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서로간의 예의라로 해도 될 것이다.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것,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기록되어있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간단하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나의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는 우리들의 행동과 태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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