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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

by coixn  /  on Feb 25, 2010 00:28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행22:3)

 

자신을 오해한 유대인들에게 의하여 죽을 뻔 했던 바울은 소란을 보고 받고 출동한 로마군인들에게 의하여 구조를 받았다.

행21:11에 이방인들에게 넘겨주리라는 예언이 실현되었다.

하지만 이방인들에게 넘겨진 것은 바울이 죽는다는 의미보다는 산다는 의미였다

바울을 죽일려고 한 것은 로마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적극적으로 바울을 죽일려고 했다. 그리고 바울을 죽이기도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는 자들까지 나타났다.(행23:12)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바울이 가로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 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행25:8-12)

 

유대인들의 소란에 로마인들은 무슨 영문인지 알고자 했다.

바울은 자기가 유대인들에게 말을 할 수 있는지를 천부장에게 물었다.

천부장은 이를 허락했고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히브리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를 했는데 하나님께 대하여 열정이 있음을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 있음이 좋은 것이나 그 열심자체가 자신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행22:4)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고 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롬10:2-4)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열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따라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복종하지 않았다.

지식에 따라 산다는 것은 말씀에 따라 산다는 것이다. 말씀에 따라 산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을 따라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그 바탕이다.

하지만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나를 먼저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6-18)

판단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여 판단이 된다.

열매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가에 따라 달려 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0-23)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말한다.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8,29)

 

바울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은 낸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가 직접 만난 예수님의 평가는 달랐다.

예수님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다르지 않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행22:7,8)

 

예수님의 평가는 바울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핍박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핍박한 적이 없다. 그는 나사렛 예수라는 인물을 만난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의 사람들을 핍박하느냐가 아니라 왜 자기를 핍박하고 있는가를 물으셨다.

이것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마25장에서 예수님은 한 비유를 들려주신다.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마25:44,45)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39,40)

예수님께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나 나쁜 평가를 받은 사람이나 다 어리둥절 했을 것이다.

예수님을 직접 뵌 사람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고, 만약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셨더라면 예수님을 지극 정성 돌볼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 교회 혹은 우리들의 가정에 예수님이 친히 방문하신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대할 것인가? 아마도 지극 정성을 다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만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성경의 다른 곳은 이러한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19-21)

 

위의 말씀들은 우리의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무식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거기에다 잘못된 신념까지 더해지만, 이것은 최악이다.

우리가 열심으로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었을 때이다.

운동경기에서 상을 받을려면 룰을 잘 지켜야 한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것이 규칙인데 시계 방향으로 아무리 열심을 내어서,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봐야 상을 얻지 못한다. 열심을 내면 낼 수록 웃음거리가 된다.

하나님의 규칙은 열심을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열심을 내라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2:14)

 

결론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이 열심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방해한다거나,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다면 없는 것만 못하다.

맥아더와 아이젠하워에 관한 일화가 있다.

맥아더와 식사를 같이 하면, 맥아더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젠하워와 식사를 하면 식사를 한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열심을 내는 것은 나의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내는 것이다.

내가 위대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하게 보여야 되는 것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7,8)

 

 

 

Me2day Yo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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