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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3:...

by coixn  /  on Jan 17, 2010 22:44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3:20)

 

학생 시절 아세아 연합신학교에 심방을 갔던 적이 있었다.

오는 길에 히치 하이킹을 해야 했었다. 그런데 인원은 10여명 정도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봉고정도의 차가 우리들을 태워 주었음 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런데 봉고는 서지 않았고, 지나는 차가 간혹 있었지만, 서는 차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기도는 헛된 것이었나? 그렇지 않았다. 우리들이 상상을 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45인승 신형 버스가 선 것이었다.

그것도 어제 출시가 된 차였다.

교회의 수련회가 있어서 태워주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새 차를 타고 서울로 오게 되었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한다면 우연일 수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이 기뻐했던 것은 우리들이 원하는 것 보다 더 큰 버스를 타고 우리들이 편하게 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여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하시는데, 종종 우리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응답을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오늘의 말씀에서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비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바울이 쓴 서신서 중에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를 옥중서신, 즉 감옥에서 보낸 편지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이 편지들은 감옥, 인간들이 불편해하거나 불유쾌해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빌립보서는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환경이라는 것은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의 에베소서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엡3:1)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7)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13)

 

그가 감옥에 간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나쁜 짓을 했거나,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일을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4-16)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것이기에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의 고난은 멸망으로 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남을 증거하고 있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를 돕고 있음을 알았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엡3:7,8)

 

그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하고 있다.

복음을 증거하는 결과로 자기에게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원해서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것과 교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돕고 계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은 내가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50:24-25)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4:14)

 

요셉과 모르드개의 말을 예로 들은 것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이며, 우리들 편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의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중단한다고 해서 중단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중단하신다면, 사람이 계속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감옥에 있던 천국에 있던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누구를 기쁘게 하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가 어떠한 환경에 놓여있는지 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고 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이 에베소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고 있다.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3:14-21)

그의 기도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강건하게 되는 것과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구하고 있다. 이렇게 구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들이 구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울이 자신의 능력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알기 때문이다.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에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무엇을 간구해야 하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간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간구에 성실히 응답을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멸시하거나 모욕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시66:19,20)

 

그러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기를 원하신다.

자신의 마음이 담기지 않은 선물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마음이 담기지 않는 선물은 사랑하는 사이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0-32)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아신다는 것이 우리들이 기도하는 이유가 된다.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

성경은 우리들의 거듭된 실수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을 우리들의 행동으로만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중심과 연약함을 보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볼 때에도 외모만 보기 쉽다. 외모만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을 차별해서 본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피해 갈 수 없는 것들이다.

기도를 그치지 않는 사무엘도 외모를 보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윗이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기 전에 사무엘이 다윗의 가족들에 찾아 간 적이 있었다.

.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6,7)

 

이 말을 하는 것은 우리들이 이러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하나님은 나의 속을 알고 계시며,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나의 문제를 자세히 진술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께 숨길 필요도 없다.

그냥 하나님 앞에 나가면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우리들은 가끔씩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그것도 나를 너무나 잘아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잊고 살 때가 많이 있다.

루터의 유명한 일화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루터가 너무 낙심하여서 모든 것을 포기 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루터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누군가의 장례를 치루었다.

루터가 물었다. 누가 죽었소.

그의 아내가 대답했다.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루터가 발끈 했다.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그런 망령된 말이 어디있는가라고 말이다.

루터의 아내가 대답했다. 당신이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행동을 해서 하나님이 정말 돌아가신 줄 알았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우리들 역시 가끔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관심하시며 심지어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처럼 행동을 한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고 착각을 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착각을 가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다.

하나님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잘못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마치 하박국 선지자가, 자기 민족의 잘못을 더 징계하기 위하여 더 악한 민족을 들어 사용하시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질문했던 것과 비슷하다.

하박국은 질문을 했고 하나님은 대답하셨다.

그리고, 바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위대한 고백이 된 말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1-4)

 

더딜지라도 지체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며,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의인, 즉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동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하박국은 마지막에 이러한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오로지 하나님만 즐거워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들이 간구한 것 이상을 주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가장 좋은 것으로 바로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하시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8:35-37)

 

오로지 하나님만을 얻으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우리들의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이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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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2day Yo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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