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7:7,8)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이 선택되었다.
별 볼품도 없었고, 아내를 팔아먹고 자기 만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훈련시켰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다.
이후 요셉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왔고, 70명이 되는 식구들을 굶주림의 위기에서 그들을 구한다. 요셉이라는 인물도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의하여 인격이 훌륭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평가가 되지만, 그의 어릴 적의 모습만을 보게 된다면 그다지 존경할 만한 자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타고난 인격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훈련에 의하여 인격이 하나님을 향하였음을 알게 된다.
요셉이 죽고 난 다음 그들은 노예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모세가 태어나고 하나님은 모세를 기적적으로 보호하신다. 모세는 40년간 애굽의 학문과 기술을 배웠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는 모자람이 있었다.
하나님은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를 훈련시키셨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후 이스라엘 민족들을 출애굽시키신다.
출애굽당시 홍해를 건너면서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목도하기도 했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반항으로 40년의 광야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들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즉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받기 바로 직전에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일 만한 자질과 자격이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많은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질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무슨 영광을 받으실려고 나를 택하셨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셨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변함없는 그 사실이 우리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에 대하여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민족들을 그토록 애지 중지 하게 인도하셨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들을 자식과 같이 대우 하셨고 인도하셨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신1:30.31)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자초한 가나안 땅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을 거부하였고 반항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 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신9:4-7)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신 것에 대한 이유를 그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이유를 우리들 안에서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그들에게 은혜 주신 이유를 찾아야 했다.
오늘의 말씀인,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7:7,8)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시고 택하심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하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을 받는 이유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도움이 되거나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이렇게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고용주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능력이 필요해서 우리들을 불러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의 관계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4-5)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가 정확하게 무엇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마태복음의 포도원주인의 비유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마20:9-14)
여기에서 포도원의 주인은 세상의 고용인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대할 때 성과에 따른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방식에 의하여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인들의 노동의 댓가에 대한 임금은 주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보면, 자신들이 주인의 이익에 기여한 공로에 따라서 평가를 받겠지만 포도원 주인, 즉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노력에 대한 적은 보답으로 주인이 이익을 취하려고 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서 그들은 댓가를 받았다는 것이다.(비유를 해석할 때 주의 해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해석하는 것이다.)
주인은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고 그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지급했다.
하나님과 우리들과의 관계는 무엇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받고 주는 것이다.
항상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주시고 우리들은 그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도 성령이 우리들과 함께 할 때이다.
우리가 증인이 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할 때 증인이 되는 것이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현대인의성경]롬 11:35
하나님께 먼저 드렸으니 하나님이 갚아 주셔야 한다고 말할 사람이 누굽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을 위하여서 무슨 일을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살라고 말을 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우리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7-29)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우리들이 행하기에 앞서서 믿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19-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롬12:2)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들을 선택하신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위하여서 거창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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