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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

by coixn  /  on Jan 13, 2010 23:04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행13:43)

[현대인의성경]행 13:43

집회가 끝나자 많은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으라고 격려하였다.

 

성령의 보내심으로 바나바와 바울은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바울은 설교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13:38,39)

 

바울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를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바로 이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13:23)

 

이 예수님이 비록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증거했다.

하나님께서 이 예수님을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행13:33)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였고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했다.

이후의 사건들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의 앞날은 그렇게 순탄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행13:48-50)

 

이곳 지방이 독특한 지방이라서 핍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의 기적 후에 또 다른 일을 만나게 된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19-22)

 

바울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제자들에게 항상 은혜에 거하라는 말과 비슷한 말을 한다.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이러함에도 공통된 특징은 이렇게 나타났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행13:52)

 

이것으로 인하여 절망을 했다는 말은 없다. 오히려 제자들은 무엇인가에 의하여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오늘 말씀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면을 하고 있다.

이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이다.

어떤 개그 프로에서 이런 농담을 하는 것을 보았다.

개그 프로의 상황 설정은 면접을 보는 것이었다. 면접관이 면접을 보는 사람에게 당신은 이순신 장군을 아는가라고 물었다. 당연히 잘 안다고 말을 했다.

이에 면접관이 이순신 장군은 당신을 아는가라고 물었다.

이순신 장군이 그 사람을 알 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잘 모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잘 알고 있는가?

우리들이 하나님을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들을 모르는 것보다 큰 문제일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알고 있어야만 우리들에게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안다고 한들, 하나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면 모든 것은 절망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적게 하나님을 안다고 한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면 인생은 그렇게 절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나를 알고 계시며 나또한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알아 가고 있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내가 하나님을 알아 가고 있는 것이 맞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신앙이기에 성경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의 이야기가 되며, 또한 나의 이야기가 된다.

사도행전의 말씀이 동화책이나 소설책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가 된다는 말이다.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무엇인가의 핍박과 고난은 당연히 있을 것이며, 또한 당연히 하나님의 선물도 있을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3-5)

 

우리가 고난을 견디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그렇다면 오늘 바울과 바나바가 새로운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하는가?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은 은혜로 살아라는 것이다.

은혜로 산다는 것은 은혜로 인하여 강하여 지는 것을 말한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딤후2:1)

 

은혜 안에 있으라는 것은 은혜가 아닌 것은 포기하라는 말이다. 은혜를 택한다는 것은 은혜가 아닌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어떤 것을 결단한다는 것은 다른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혜가 아닌 것을 포기하라는 것은 은혜를 온전히 붙잡으라는 것이다.

나의 삶이 은혜에 의해서만 좌지우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명령하신 것 중의 하나가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은혜를 선택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기 부인이라는 것이 하나님께 대하여는 예라고 말을 하는 것이며 나의 죄악된 본성에 대하여서는 아니요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느6:14)

 

하나님의 일을 하는 느헤미야를 방해하는 이들에 향하여 느헤미야는 자신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에 맡겼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21)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거하는 것이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느6:16)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을 배반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항상 은혜 안에 거한다는 것은 은혜를 따라 산다는 것이다.

이 은혜가 그리스도가 나의 원칙이 된다는 것이다.

은혜에 따라 산다는 것은 나의 본성을 거스리는 것이지만, 이것은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행13:52)의 말씀을 이루는 지름길이다.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시31:1)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시119:116)

 

P10202162.JPG

Me2day Yo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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