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5:11)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같았지만, 한 가지 가지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었던 나아만 이었다. 그는 나병환자였던 것이다.
그는 나병을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체념하고 있었는데 한가지 희소식을 들었다.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어린 여종 하나가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만날 수 있었더면 병을 능히 고쳤을 것이라고 했다. 어린 여종이 평소에 믿을만 했는지 아니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지 그는 자신의 왕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그리고 아람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자신의 신복인 나아만을 고쳐 줄 것을 부탁했다.
당연히 이스라엘 왕은 될 수 없는 이 일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고자 하는 구실을 만드는 줄 알고 괴로워 했다.
이 사실을 엘리사가 듣게 되었다.
엘리사는 나아만이 오거든 자기 오게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가게 되었다.
나아만은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이제 병이 낫게 될 것이라는 것과 혹시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이스라엘 선지자가 어떻게 자신을 고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엘리사의 집에 섰을 때 엘리사가 마중을 나오기는커녕 사람을 보내어 요단 강가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그리하면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을 전했다.
나아만은 즉시 분노했다.
성경은 이 장면과 이후의 일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5:11-14)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충실한 종들이 그를 막았다.
이 보다 더 심한 일을 시켜도 행했을 당신이 어찌하여 그 작은 일에 순종을 하지 못하는가라고 그를 설득했다.
나아만은 엘리사의 명에 순종하기로 했다.
그는 자기 나라의 강물보다 좋지 못하다고 느낀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니 거짓말처럼 병은 낫게 되었다.
만약 나아만이 자기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면 그의 병은 영원히 고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병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 나아만 장군을 통하여 생각을 해 보고 싶은 것은 내 생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나의 생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생각, 즉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리 저리 흔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없으면, 곧장 혼란을 느낄 수 있으며 삶의 의미도 찾기 어렵다.
가치관에 대한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는다면 세상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자기에게는 무의미하게 된다.
이처럼 생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신앙 생활,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있어서 자기 생각을 먼저 갖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들의 생각을 정립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지만, 이것이 올바른 토대위에서 정리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들의 생각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생각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린 아기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아무런 장애가 있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다 받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기가 10살 20살이 되어도 갓난 아기때의 생각대로 행동을 되풀이 한다면, 이 아이는 부모의 근심거리요 사회의 부적응자가 되기 쉽다.
아기는 커 가면서 부모와 사회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생각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우리의 일을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고 착각을 했던 사람 몇 명을 만날 수 있다.
첫 번째가 사울이다.
그는 하나님이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15:1-3)
하나님의 명령은 아말렉을 진멸하는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잔인하게 느껴지는 명령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
하지만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는 대신에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했다.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15:15)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무엘의 지적에 의하면 자신의 탐심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교묘하게 위장한 것이었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삼상5:19)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섬김을 받는 것을 원하시지 사람들의 방식으로 섬김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순종을 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전제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와 하나님이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따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이다.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다.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로 알고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를 물으셨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하게 이야기 했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비로소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에 사로잡혀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게 되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16:21-23)
베드로의 행동이 사람의 관점이나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십자가를 훼방하는 행동이었다.
그것은 바로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8-10)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한 방법으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13:4)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가장 강하게 발휘 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생각대로 제한했다가 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는 많이 있다.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왕하7:1,2)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시78:19)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특히 자신의 생각을 가지는 것을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관점과 생각으로 좁은 한계 내에서 바라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자기 마음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잠28:26)
그렇다면 우리들의 생각을 벗어나 하나님의 생각을 가질 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말씀과 기도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성경책, 즉 자신의 말씀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함을 우리들에게 알리셨다.
우리는 말씀을 봄으로서 알 수 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5-17)
우리가 말씀을 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각하는 방법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을 한다.
두 번 째는 기도인데 그것은 세례요한의 자세로부터 배울 수 있다.
요한의 자세는 이러했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모르는 것을 자세히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마11:2-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야고보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분이라고 격려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나아마는 자신의 생각을 버림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
사울과 베드로 역시 자신의 생각에 붙잡혀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한계 짓다가 망하기도 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들의 생각대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각, 방식을 알 수 있는 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물리치시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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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맞추어 감이 신앙의 가장 큰 과제이지 않나 싶네요.
언제나 그 당시에는 잘 모르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닫게되니 말이지요.
차에 있는 네비게이션마냥 매 순간 방향을 알려주시면 좋으련만....
아니다. 알려주셔도 잘 따르지 않는게 우리네 죄인의 습성일런지도.
여하튼,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그분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