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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

by coixn  /  on Jan 06, 20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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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18:21)

 

우리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선택은 항상 우리들 앞에 있다.

선택은 우리가 선택을 하지 않은 것에서 우리들을 자유롭게 한다.

일례로 성경은 우리들에게 좁은 문과 넓은 문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

 

좁은 문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넓은 문으로 가게 되어 있다.

좁은 문과 넓은 문, 어중간한 문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

좁은 문을 선택한다면, 넓은 문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이고 넓은 문을 선택하면 좁은 문에서 자유하게 된다. 세상을 선택하면 하나님에게서 자유하게 되고, 하나님을 선택하면 세상에서 자유하게 된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어떤 것의 주인으로 살던지 아니면 종으로 사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말고 나에게 직접 말을 하라”고 한다.

이 아리송한 말은 시편 42편을 강해하면서 했던 말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무슨 말 장난처럼 들리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그것은 내 속에서 들려오는 말이 좋은 말, 즉 하나님으로부터 희망이 넘치는 말이 많은지, 아니면 스스로를 절망시키는 말이 많은지를 보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의도적으로 말씀을 기억해 내지 않으면, 두렵다, 힘들다. 안된다라는 말을 되풀이 한다.

이것은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의 외부의 환경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이나 뉴스 등의 환경을 보면, 힘들다와 욕을 하는 뉴스와 환경은 굳이 내가 나서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냥 들리는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 생각없이 텔레비전이나 사회나 나의 내면의 생각을 들으보면 힘들다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듣게 될 것이다.

서점에서 책을 보게 되더라도 성공하는 법의 책은 찾기 쉬워도 실패하는 법의 책은 찾기 어렵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잘하는 법의 책은 있어도 공부를 못하는 법의 책은 없다.

 

이러한 현상을 넓게 본다면 하나님을 알라는 책은 있어도 하나님께 멀어지는 법, 이라든지 나쁜 사람이 되는 법등의 책은 없다.

이것은 나쁜 말들이 나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가 그들을 선택했고 허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적극적인 선택, 소극적인 선택으로 생각해도 되겠다.

 

오늘의 말씀은 자신만 혼자 남았다고 생각하는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권면하고 있는 모습이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18:21)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엘리야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바알선지자들과 대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 말은 바알도 살아있고 하나님도 살아계시기 때문에 힘이 쎈 어떠한 신을 섬기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을 알라는 말이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왕상 18:36,37)

 

그들이 바알과 하나님 사이를 저울질 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져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알이 살아있다면 그들을 보호할 것이나 실상은 바알이 살아있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알을 섬기는 것은 바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야는 바알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귀신을 두려워한다.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귀신들이 두려워 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를 때 나타나는 현상중의 하나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는 것과 같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영화는 있어도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영화는 없다. 단지 어떤 자연등을 가리키기도 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28-31)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눅10:20-22)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은 우선 하나님으로 부터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기로 결정을 하셔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으로 우리가 왈가왈부 할 수 없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자신을 알리기로 작정하셨다.

우리가 말씀을 자유롭게 보는 것이나 자유롭게 기도하는 것, 자유롭게 모이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래 이스라엘 자손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1!:17,18)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얻는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우리들의 선택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기회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들은 그 기회를 회개를 통하여 받아들였다.

회개라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것을 돌이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번의 회개는 하나님을 완전하게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가?

구원 얻는 회개는 한 번만 필요하지만,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개를 탄생이라고 본다면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징계, 즉 훈련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받는 것을 심판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받는 것은 징계이다. 그들은 모르고 지나지만 우리들을 그것을 회개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히12:8-10)

 

하나님이 우리들을 훈련시키시는 것은 우선 하나님의 만족이 아니라 우리들이 바르게 살게 하기 위함이다.

[표준새번역]히 12:10

육신의 부모는 잠시 동안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훈련하였지만, 영들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훈련하십니다.

 

그는 우리들을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어떤 것과 하나님 사이에 머뭇머뭇 거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택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선택할 기회를 우리들에게 주신다.

그것은 우리들은 은혜라고 부른다.

그 은혜를 우리들은 회개를 통하여 얻게 되었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세상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우리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대상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시간도 모든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Me2day Yo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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