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니에, 「공동체와 성장」 (성바오로, 2007) ※ 본 글은 위의 책을 임의로 요약한 것이며 일부 단어는 개신...
장 바니에, 「공동체와 성장」 (성바오로, 2007)
※ 본 글은 위의 책을 임의로 요약한 것이며 일부 단어는 개신교의 관점을 따라 발췌자가 임의로 변경했다.
20090301-6 이름 :
지난 시간에 나눈 교재와 대화 중에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공동체는 살아 있는 몸이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의 공동체를 하나의 몸, 신비체로 이야기한다. 공동체는 모두가 하나의 몸이며, 우리는 저마다 서로에게 귀속되어 있다. 이러한 소속감은 살과 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비롯된다.
우리 각자는 함께 살도록, 동일한 몸인 동일한 공동체에 소속되도록 저마다 부르심을 받았다. 다른 사람과 함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투신하고, 서로에 대하 책임을 감당하도록 작정한 우리의 결심은 바로 이 부르심을 토대로 한 결심이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 12:4, 5)
이 몸 속에서 각 지체는 하나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도 바울은 ‘발은 손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청각과 시각은 후각을 보완하고 있다(고전 12:22, 24-26). 그리고 이 몸 속에서 각 지체는 다른 지체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은총의 선물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롬 12:6-8)
공동체에 해당하는 이 몸은 사랑의 사업, 즉 하나님 아버지의 사업을 수행하며 거기에 필요한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것은 기도하는 몸이요 자비로운 몸이 되어 역경 속에서 낙담하고 있는 자들을 치유하고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부여받은 선물을 활용하는 것이 곧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부여받은 선물에 충실하지 못할 때 우리는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 모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따라서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 부여받은 선물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또 활용하며, 그 선물을 책임지고 개발해 나가는 일이야말로 중요하다.
각 구성원이 지닌 선물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되는 것, 그리고 각자가 자기 선물의 용도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선물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그 선물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누구나 자신의 선물에 따라 자기 위치를 갖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유용할 뿐 아니라 독보적이고 필요한 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경쟁 의식과 질투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창조의 팔일」에서 어떤 여성이 자기는 부여받은 선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그녀는 자기가 어떤 선물을 부여받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선물은 다름 아닌 중보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이름을 낱낱이 외우는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역시 자기가 부여받은 선물을 더 훌륭하게 활용하기 위해서 그녀와 그녀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극기를 토대로 하여 구성원을 모두 비슷비슷하게 만들려고, 또는 변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그래야 좋다고 생각하는 공동체가 너무나 많다. 이런 공동체의 토대는 법이나 규칙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와 정반대 되는 것이다. 각 사람은 부여받은 선물 속에서 성장하면서 공동체를 건설해 나가고 그 공동체를 더욱 아름답고, 더욱 빛나고, 더욱 뚜렷한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만들어야 한다.
질투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질병 중 하나다. 질투는 부여받은 자신의 선물을 모르거나 그 선물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생긴다. 우리가 자신의 선물에 확신을 가질 때 결코 다른 이들이 부여받은 선물에 질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선물인 재능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고 잠재되어 있으나 재능보다 훨씬 깊이 있는 선물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뚜렷한 재능을 주로 자기의 영예를 높이거나 자기를 입증하거나 지배하는데 이용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공동체 안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구사하지 않는 편이 낮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의 선익을 위해 자기 재능을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공동체의 삶에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개개인이 한 사슬 속에 필수 불가결한 고리가 되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만사가 달려 있다. 가장 작은 고리라고 안전하게 맞물려 있을 때 비로소 그 사슬은 끊어지지 않게 된다. 공동체 내부에 하릴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면, 그 공동체는 바로 그 사람들 때문에 몰락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구성원이 공동체를 위해 수행할 명확한 임무를 부여 받는다면, 그들은 저마다 의혹의 기간을 거치면서 자기가 쓸모없거나 무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비단 약자가 강자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또한 강자도 약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약자가 소멸하는 것은 곧 단체의 사멸을 의미한다.”
우리 선물의 활용은 곧 공동체의 건설을 뜻한다.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봉사의 직무는 혀의 제어, 겸손, 온유, 비판을 묵묵히 감수하는 침묵, 귀담아들음, 흔연히 사소한 봉사를 수행하려는 꾸준한 봉사의 자세, 형제들에 대한 지원, 말씀의 선포, 용서, 진리의 포고(일반에게 널리 알림), 권위 등이 그것이다.
선물이란 반드시 어떤 기능과 연결된 것은 아니다. 기능과는 무관하게 어떤 기능에 생명력을 불어 넣거나, 격려하거나, 동정심, 어떤 일이 잘 못되어 가고 있을 때 그 사실을 깨닫고 또 그 원인을 지적하는 분별을 선물로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빛을 선물로 받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공동체의 근본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직시한다. 기쁨과 안식 및 개인의 성장을 촉발하는 분위기를 창조할 수 있는 선물을 지닌 사람도 있다. 사람은 저마다 모든 사람의 선익과 성장에 활용할 수 있는 어떤 선물을 갖고 있다.
우리는 정녕 우리 각자의 방식대로 다른 사람을 양육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아버지 및 그분의 아들 예수와의 이 특유한 상호 관계를 생활화하도록 창조된 것이 우리이다.
공동체는 우리 모두가 자유스럽게 자기가 되어 살면서 생각하는 일체의 것들을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이다. 모든 공동체가 다 이런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공동체는 반드시 이 방향으로 전진해야 한다. 비판받거나 바보 같다는 식의 눈총을 받거나 배척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갈 길은 아직 요원하다.
자기 표현이란 단순히 우리가 느끼는 욕구 불만과 분노, 언짢은 일들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우리의 은밀한 동기와 실제로 생활화하고 있는 바를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무엇으로 확인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재능에 대한 오해가 있었나요.
내가 받은 선물은 나의 삶에 어떤 유익을 줍니까.
내가 받은 선물은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개인의 비밀
공동체는 각 사람이 내적 자유를 향해 성장하는 자리이다. 공동체는 개인의 의식, 하나님과의 유대, 사랑에 대한 인식, 은총과 선물의 수용 능력 모두가 성장하는 자리다. 공동체는 결코 개인에 우선할 수 없다. 사실 공동체의 아름다움과 통일성은 각 개인의 밝은 양심과 그 빛, 진리, 사랑, 그리고 타인과의 자발적인 일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참된 공동체에서는 개개인이 자신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으며, 그 비밀을 타인에게 넘기거나 심지어 그들과 함께 나눌 필요조차 없다. 공동체 전체에게 반드시 넘겨주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의 선물, 고통, 영감의 샘이 있는 법이다. 개개인은 자신의 개별 양심을 심화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공동체 생활의 약점과 동시에 강점이 있다. 약점은 개개인의 양심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자유로운 까닭에 시간이 지나면서 이기적인 자가 되어 공동체를 떠나거나 공동체에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을 우선시하는 것은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면서 하나님과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자기를 내어 주는 마음보다 강한 것은 없다. 사랑은 두려움보다 훨씬 강하다.
예수님은 사도들과 마지막 이야기를 하시는 자리에서 당신이 당신 아버지와 하나이듯이 ‘제자들도 완전히 하나가 되도록’ 세 차례나 기도하신다. 이 기도는 공동체 내부의 일치를 원한다. 모든 공동체는 이 일치, ‘한마음, 한정신, 한영혼’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 속에 두려움과 편견이 존재하는 한 전쟁과 참혹한 불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치유되어야만 커다란 정치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공동체는 사람들이 인간이 될 수 있는 자리요, 사람들이 가장 내밀한 감정까지 강화될 수 있는 자리이며, 또한 사람들이 일치와 내적 자유를 향해 매진할 수 있는 자리다. 공포와 편견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타인에 대한 신뢰가 깊어 갈 때, 공동체는 이 세상의 갈등을 해결해 줄 삶의 방식과 자세를 환하게 증거하게 된다.
전쟁에 대한 답은 형제자매들처럼 사는 것이다. 절망에 대한 답은 한없는 신뢰와 희망이다. 불의에 대한 답은 함께 나눔이다. 편견과 증오에 대한 답은 용서다.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것은 인류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진정한 정치적 해결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과 외부’-하나님-와 연결된 인간의 내밀한 기쁨을 체험하고 맛볼 수 있도록 하려고 일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는 사람들이 인간이 될 수 있는 자리요, 사람들이 가장 내밀한 감정까지 강화될 수 있는 자리이며, 또한 사람들이 일치와 내적 자유를 향해 매진할 수 있는 자리다. ㈏(공동체를 통해) 공포와 편견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타인에 대한 신뢰가 깊어 갈 때, 공동체는 이 세상의 갈등을 해결해 줄 삶의 방식과 자세를 환하게 증거하게 된다’는 글에서 밑줄 친 부분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말해봅시다.
㈎
㈏
‘전쟁에 대한 답은 형제자매들처럼 사는 것이다. 절망에 대한 답은 한없는 신뢰와 희망이다. 불의에 대한 답은 함께 나눔이다. 편견과 증오에 대한 답은 용서다.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것은 인류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진정한 정치적 해결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위의 글에 공감한다면 공동체적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 ※ ※
‘개인과 사회, 부분과 전체, 인간과 이성, 자기와 타자, 특수성과 보편성, 민족주의 국가와 제국주의, 자연과 인간, 순수와 참여’-박명림, 2008-
위와 같이 여러 범주를 구분하고 통합하는 것은 우리의 공동체적 생각의 습관과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역사는 복수를 하거나 울분을 토로하는 마당이 아닙니다.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관용과 용서의 교훈입니다. 잘못을 당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희생자이지요.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누가 완전히 휘어잡겠습니까?…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급류와 탁류 속에서라도 잘못이 없도록 조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 판단하고 잘못 행한 사람에게 이해를 베푸는 것입니다. 용서 없는 정의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오로지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에 잔존하는 비인간성을 제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잘못은 정의의 원리를 소급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김우창, 2008-.
(공동체와 개인의 과거와 미래를 대하는 자세로써) 밑줄 친 부분에 대하여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에스겔 3: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고린도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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