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니에, 「공동체와 성장」 (성바오로, 2007) ※ 본 글은 위의 책을 임의로 요약한 것이며 일부 단어는 개신...
장 바니에, 「공동체와 성장」 (성바오로, 2007)
※ 본 글은 위의 책을 임의로 요약한 것이며 일부 단어는 개신교의 관점을 따라 발췌자가 임의로 변경했다.
공동체의 목표를 향하여
공동체는 반드시 어떤 종류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람들이 함께 살기로 결의하고도 특수한 목표가 없거나 공동 생활의 ‘이유’가 불명확한 경우, 조만간 갈등이 생기고 모든 일이 붕괴되고 한다. 개인이 스스로의 기대치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이 공동체 내부에 긴장을 야기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각자가 아주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된다.
결혼을 하려는 사람은 결혼이란 그저 함께 살고 싶다고 이루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결혼(생활)이 지속되려면 자신이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왜 함께 지내려고 하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어떤 공동체든지 그 구성원들이 왜 모여 생활하고 각자에게 요구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시해 주는 헌장이 있어야 한다. 이는 또한 공동체가 출범하기 이전에, 그 구성원들이 공동 생활에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그들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뜻도 된다.
브루노 베틀리하임, ‘공동 생활이란 그 생활 자체 이외의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할 때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믿는다. 즉, 공동체가 된다는 목표 이상의 어떤 목표,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목표에 깊이 헌신하여 자연스럽게 발전할 때 존립이 가능해진다.’
공동체가 자체의 본질 탐구 면에서 보다 진실하고 보다 창조적이면 그 구성원들 역시 각자의 관심사를 떠나 하나로 결함되려는 성향이 커진다. 반면에 공동체가 본래의 목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수록 구성원들은 하나님과 가난한 자들의 요구에 최선을 다해 응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문제, 그들의 부나 가난, 공동체의 구조 등만을 거론하게 될 것이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 전체가 어떤 절박감을 느끼고 있을 때 밝게 빛나는 공동체, 완전히 하나로 일치된 공동체가 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단순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오직 자기 성화(聖化)만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그 분의 나라를 앞당겨 실현하며 생활할 때 그들은 진정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공동체는 암흑의 세계에서 빛이 되고 교회와 온 인류에게 맑은 물을 제공하는 샘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슨 권리로도 결코 미지근해질 수는 없다.
※ ※ ※
◊내가 속한 공동체(MIB)의 목표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까?
공동체의 탄생
도시가 비인간화되고 또 반대로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외롭고, 무기력하고 불행하다고 느낄 때 더 절실히 공동체를 찾는다. 그들에게 혼자 있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는 그들에게 신비로운 환대와 나눔의 장소로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본다면 공동체란 끔찍한 장소일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한계와 이기심을 스스로 자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하루 종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무능력, 정신적 장벽, 애정적 불안, 도저히 채울 길 없어 보이는 욕망, 불만과 질투심, 증오와 파괴적 충동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에는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될 때에는 사랑하는 능력이 절대로 부족하며, 다른 사람들의 삶을 철저히 부정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우리에게 사랑이 불가능해진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고뇌밖에 없다. 사랑은 환상처럼 보이며 고독과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 생활은 우리의 한계와 약점과 무지를 뼈저리게 들추어 낸다. 우리 각 자의 내부에 괴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그것들을 밖으로 끌어내어 길들이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해방을 향한 성장이다.
공동체는 우리의 능력과 더불어 한계도 받아들일 때 점차 해방의 자리로 나아간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 자신을 더 깊이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공동체란 두려움이나 압박감이 없이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장소다. 공동체 생활은 모든 구성원들의 상호 신뢰를 통해 심화된다.
공동체 생활에서 우리는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발견하고 또 그것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거듭남이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 상처에서부터 탄생하게 된다.
※ ※ ※
◊교회 공동체를 통해 보게 된 내 안의 괴물(혹은 한계)은 무엇입니까?
소속감
(도시화가 덜 진행된) 아프리카에서는 그들이 의식(儀式)과 전승들을 통해 그들이 깊이 있는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누구나 소속감을 갖고 있다. 같은 부족이나 마을 출신이면 모두가 친 형제가 된다. 아프리카 인들의 경우 대다수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은 공동체를 강렬하게 생활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돈으로 무엇을 사는 법이 없지만 자동차만은 반드시 산다고 한다. 자기 동족을 찾아가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 형제적 유대뿐이다. 그들의 소중한 이 유대는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죽어 갈 경우 그것을 감지할 정도다. 그들은 감각으로 동료의 죽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르데 르누아르, 「배척받은 자들」(1974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만일 캐나다 인디언 아이들에게 문제를 주면서 제일 먼저 답변하는 아이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면 모두 함께 깊이 의논을 하여 똑같이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그들은 어느 한 사람이 승자가 되고 나머지는 패자로 물러서게 만드는 그런 일은 견디지 못한다. 승자는 상을 받지만 유대감을 상실하게 된다.
서구의 문명은 경쟁적인 문명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받을 들여 놓는 그 순간부터 ‘이기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에 학급에서 일들을 하면 부모들은 기뻐한다. 이렇게 해서 개인 위주의 물질적 진보와 최고가 되어 특혜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동료 의식과 자비심 및 공동체를 대신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사람들은 좁은 집 안에서 많든 적든 자기네끼리 살아간다.
나는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제자 제시 잭슨이 운집한 수천 명의 흑인들을 향하여 “내 백성이 수모를 겪고 있다”라고 했던 말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도 “내 백성이 굶주리고 있다”라고 했다. “내 백성”이란 “나의 공동체”이다.
내가 ‘내 백성’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배척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 백성이란 나를 알고, 또 나와 운명을 함께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의 공동체다. 그들은 온 인류를 향하는 도약대다. 내가 우선 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한 나는 보편적인 형제가 될 수 없다.
일치를 향한 여정을 오랜 동안 함께 하면 할수록 소속감 역시 성장하고 심화된다. 이 의식은 하나의 공동체에 귀속한다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에, 지구에, 공기와 물과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온 인류에 소속된다는 의식이다. 우리가 서로 가까이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거나 간에 내 형제자매들은 나의 내부에 아로새겨져 있다.
※ ※ ※
◊지금 나에게 있어 ‘내 백성’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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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2009.02.07 17: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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