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사역과 어린이 반목회 본고는 21세기사역자연구소의 강의사역 프로그램에 따라 한치호 목사가 포곡교회 교사...
by 느티나무 / on Oct 04, 2008 06:53
| 교사의 사역과 어린이 반목회 본고는 21세기사역자연구소의 강의사역 프로그램에 따라 한치호 목사가 포곡교회 교사훈련 세미나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본고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 분은 언제라도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처 : 21세기사역자연구소 전화 02-296-0371 한치호 목사 011-738-5307 1. 주일학교의 사역자들은 곧 목회자입니다. 교사는 자신이 담임한 아이들을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촉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교사, 그는 분반사역에 있어서 누구라 말할 수 있습니까? 주일학교의 사역자들은 성경학습을 통해서 아이들의 영적인 성장을 촉진시키며, 그들의 영적인 삶을 도와 주어야 하는,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로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아이들에게 많은 내용의 성경을 알도록 이야기해 주기보다는 그들이 분반이라는 품 안에서 어떻게 자라라는가에 초점을 모으는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마땅히 우리들이 말하는 '분반관리', '학습관리'라는 용어는 주일학교 사역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교사는 지휘하고 명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어린이(청소년) 성도들을 인도하며, 아이들 속에 섞여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주일학교의 사역자들은 담임 목사가 교회를 목회하듯이 담임된 자신의 분반을 목회해야 합니다. 목회자라는 이름이 꾝 목사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목자가 양을 치듯이 돌보는 사역을 목회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를 수행하는 사람을 목회자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일학교 교사도 분반의 양무리 앞에서 목회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교사를 목회자라고 부르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사가 아이들을 향해서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그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삶의 '질'을 달리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목회자인 교사는 그가 먼저 성경을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의 현장으로 아이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주일학교에서 일어나는 교육행위는 관리적인 체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운동은 목회를 통해서만 가능해집니다. 분반활동이 성경진리를 통해서 아들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일에 초점을 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분반을 관리해서는 안 됩니다. 분반을 목회해야 합니다. 2. 결석을 방지하는 분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학교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있지 못할 때 그 기능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 느끼고 있듯이, 일반적인 세속문화는 어제, 오늘 다르게 변화하고, 그 문화 속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서 어린이들의 관심을 빼앗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 가운데는 일반적인 세속 프로그램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한결 같은 주장은 주일학교 안으로 어린이들을 가두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교회에도 세속문화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한가지만 물어 봅시다. "우리는 교회에 왜 나옵니까?" 강의를 들으려고 교회에 오는 오는 이들이 있습니까? 그들은 대학으로 가면 훨씬 고양된 강의를 듣게 될 것입니다. 이웃 사람들과 교제를 하려고 오는 이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음에 맞는 사람들, 생활하는 수준이나 생각하는 것이 공통되는 사람들과 모임을 갖는 것이 보다 풍부한 교제의 기쁨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1) 주일학교로하여금 주일학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말씀을 배우고자 함입니다. 만일, 주일학교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소홀하고 세상 풍습을 좇는 기관으로 떨어진다면, 멀지 않아 주일학교는 문을 닫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진리를 깨닫게 해야 하겠지요. 그래서 그들이 두려움과 뗠림으로 여호와를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프로그램에 매달리지 않고 어린이들 스스로 경건한 믿음을 지키고, 그 믿음이 자라기를 바라는 자세에 의하여 주일학교에 출석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2) 출석에 대한 준비를 시켜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주일 또는 수요일의 주일학교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 하는 것이 그들의 출석 및 결석을 결정합니다. 교사가 공과학습을 준비하며서 주일을 기다리듯이 어린이들도 주일학교에 등교하는 시간을 준비하면서 기다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출석준비를 시키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내가 등교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등교시간 전에 출석 장애요인이 발생하거나 결석에 대한 유혹이 있을 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결석하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출석준비를 시킬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과제물을 내주는 것이 출석준비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주일학교에 등교하여, 예배시간을 비롯해서 성경학습 및 특별활동 때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기대를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출석에 대한 준비입니다. 이것은 출석동기를 자극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지요. 출석을 준비하면서 어린이들은 주일학교 활동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 기대는 출석동기를 강하게 하므로 여간한 출석 장애요인이 발생해도 이를 이기고 출석하게 됩니다. 기대란 본래 동기를 강화하고, 더욱 큰 욕구를 일으키게 하지요. 3) 어린이들을 참여시키셔야 합니다. 주일학교는 교사들의 어떤 역량이 발휘되는 기관이 아닙니다. 어린이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말씀의 진리를 배우는 곳입니다. 교사는 이들을 위한 사역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주일학교는 큰 착각 속에 헤어날 줄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 증거로, 어린이 예배만 따져보아도, 말이 어린이 예배이지 그것은 교사들의 예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은 좌석에 앉아 있기만 할 뿐 교사들이 예배드리는 행위의 주체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릭스는 그의 책(교사훈련지침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그들이 교실내의 학습활동 진행에 자기의 능력을 투여할 수 있을 때 참가하려는 의욕이 고조된다." 교사들만으로 이루어지는 주일학교의 운영은 어린이들의 참여 촉진을 저해합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참여시키는 주일학교가 되기 위하여 몇가지 떠오르는대로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주일 예배에 있어서 : 사회, 기도, 성경본문의 읽기, 광고 등의 순서는 어린이가 담당하게 합니다. -성경 공부에 있어서 : 출석부르기, 본문성경의 읽기, 어린이 교재의 본문읽기, 기도 등은 어린이가 담당하게 합니다. -오후 활동에 있어서 : 어린이 자치회 운영을 통하여 오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실시하게 합니다. -특별 행사에 있어서 : 교육활동을 돕는 특별한 행사를 마련할 때는 진행에 있어서 어린이들도 역할분담을 하도록 하고 교사들은 기획하고 진행을 보조합니다. 4) 자율적인 규율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규율 또는 내규는 조직을 튼튼하게 하는 동시에 구성원들로 하여금 참여정신(membership)을 지니도록 합니다. 주일하교란 본래 출석에 대하여 의무규정이 있지 않고, 신앙을 기초로하여 출석하도록 하는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이 결석을 하였을 때 어떤 벌을 가한다든지, 어떤 힘을 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어린이 개개인의 바람직한 자세에 호소할 수 밖에 없지요. 주일학교가 자율적인 기관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질서나 규율은 제도화 되어야 합니다. "출석하면 좋고 결석해도 그만"이라고 하면 질서가 없어지고 바람직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지요. 신앙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사에 의존하는자유로운 것인데, 규칙을 세워 강제성을 띠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신앙은 자유롭지만 신앙을 표현하는 행위나 신앙이 요청하는 행위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이행될 때 그것이 보다 순결하고, 보다 심도깊은 기독교교육으로 성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자율성에 의존한 엄격한 통제와 규율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규율은 일반 조직의 규율과는 성격이 달아야 함이 마땅하지요. 즉 교회가 갖고 있는 힘에 의해서 시행되는 일방적인 것이 되어선 안 됩니다. 주일학교에 다니기를 원하는 어린이들과 주일학교 조직이 약속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주일학교에서의 생활을 비롯하여 예배, 성경학습 등에 관해서 인격대 인격으로 약속을 하도록 합시다. 5) 학급의 교사가 아니라 어린이들의 교사가 되셔야 합니다. 목자가 양무리를 칠 때, 목자는 양무리를 하나로 보지 않습니다. 양 한 마리의 돌봄에서 시작하여 한무리의 양을 치는 것이지요. 우리가 교사를 말할 때, 가령, 5학년 1반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과 최영분의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당신이 자신을 가리켜 5학년 1반 선생님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 학급의 어린이들과는 직접 상관되지 않습니다. 그 학급의 어린이들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겨도 당신에게는 교사로서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다만 5학년 1반 선생님일 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그 학반에 있는 최영분의 선생님이라고 할 때, 그것은 전혀 다릅니다. 즉 당신은 최영분이라는 어린이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사들의 태도는 어린이들의 출결석에 바로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 보이는 가르침보다, 보이지 않는 가르침에 유의해야 합니다. 교사는 어린이들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해답을 주는 열쇠가 됩니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무심코 보여 주는 관심이 그들로하여금 주일학교에 출석하도록 격려하거나 결석하도록 합니다. 사람이나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붙임성은 사랑과 관심의 그림자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자기에게 조금이라고 더 친절을 베풀고 귀여워해 주는 사람을 잘 따르고 늘 그 주변에 있기를 원합니다. 교사가 어린이들을 한 무리로 다루지 않고, 한 어린이, 한 어린이에게 관심으로 베풀고 사랑으로 감싸줄 때 그들은 언제나 교사 옆에 있으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결석을 막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 어린이들에게 지체의식을 고취시켜야 합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서로 관계를 맺고 있었듯이 사람은 관계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이웃과 함께 하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라 말할 수 있지요. 이제 각 지체들은 교회공동체를 이루면서,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어린이들이 주일학교에 출석하면서 지체의식을 가질 때, 그들의 행동은 단순하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는 우리 학급의 한 지체가 되고, 우리 학급은 우리 주일학교의 한 지체이며, 주일학교는 우리교회를 이루는 지체가 된다'는 의식을 고취시켜 주어야 합니다. 공동체의식의 결여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 한 몸을 체험하는 하나됨에 머무르지 못하게 하고 뿔뿔이 흩어지도록 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 속에 늘 참여하시며, 교회는 하나님의 공동체로써 하나님께 응답합니다. 무성한 녹음을 이루는 수많은 가지들이 다 한 나무에 붙어 있듯이 우리는 어린이들로하여금 학급에 붙어 있도록 하고, 학급은 각기 주일학교 전체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나', '너'가 아니라 '우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가정과 동네사회, 학교에서 배양되어온 개인주의가 주일학교에 들어와서 공동체주의로 개혁되도록 도와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서로 지체의식을 가질 때, 그들의 결석은 자연스럽게 방지된다고 봅니다. 지체의식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결석하면 안 돼'라고 말하기 전에 그들이 스스로 결석하면 안 된다는 의식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혹 결석이 발생하면 서로에 대하여 염려를 하게 되지요. 7) 또래 모임을 적극 운용하십시오. 사회성 면에서 볼 때, 유초등부 어린이들은 마음에 맞는 친구끼리 어울리기 좋아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고 관찰될 수 잇습니다. 우리는 이를 또래 집단의 형성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또래 모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많은 삶의 양상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 또래 모임은 자발적으로 쉽게 형성됩니다. 마음이 맞는 아이들둘, 셋만 모여도 또래 모임이 결성됩니다. 또래 모임에서는 설득력과 통솔력이 있는 어린이가 곧 지도자가 되지요. 이 모임은 약속과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지요. 그리고 서로의 비밀은 꼭 지키는 것을 절대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약속의 어김은 배신으로 간주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사가 또래 모임의 특성을 이용해서 어린이 관리에 운용한다면 효과적으로 분반을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가정, 학교, 동네 사회에서 발생하는 또래를 주일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조성하면 됩니다. 작은 그룹의 운동을 도모하기 위해서 마음에 들고, 함께 행동 통일을 할 수 있는 아이들끼리 그룹을 형성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주일학교 생활을 또래 모임 형성의 목적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어린이들이 공동체를 체험하는 가운데 서로가 출석에 대한 다짐을 하고, 모든 활동에 있어서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자극해야 합니다. 3. 아이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사역을 확장해야 합니다. 1) 늘 양떼의 형편을 살펴야 합니다. 목자의 마음의 자리에는 언제나 양떼가 있어야 합니다. 가령, 목자는 자기가 돌보아야 하는 양들이 쉰 마리가 있다면 그의 마음자리에 각기 쉰 마리의 양들이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마음 자리에도 아이들이 있어야 해요. 우리는 실제의 양떼를 돌보는 목자들인 바 더욱 양무리인 아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는 말과 같이 아이들에게 마음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요? 심방은 방문하여 피심방자를 돌아보는 이를 가리킵니다. 교사는 심방을 함으로써 생활 속에 있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요. 이 만남은 교사로 하여금 아이들의 현주소를 알도록 해줍니다. 이로써 그는 그들의 영적인 건강상태를 진단하고 , 그에 따라서 올바른 신앙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이렇게 볼 때 심방은 '제2의 교실'이 되어 아이들의 신앙생활을 훈련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찾아가는 직접적인 방분 심방 때, 담당 교사와 동행하는 아이들은 심방 대상이 되니 아이들과 관계에서 교제가 더욱 풍성해집니다. 아이들끼리 지체 의식이 불일 듯이 일어나고, 서로의 교제로 말미암아 좋은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지요. 이것은 심방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열매다. 이로써 어린이(학생)들은 성도의 본분을 배우게 됩니다. 2. 가정을 방문하는 일을 사역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교사들은 누구나 심방에 큰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교사라는 직책이 참으로 많은 일들을 요구하고 있으나 교사들은 공과준비만으로도 많은 사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교사들이 실제로 아이들의 가정을 방문해서 어린이의 형편을 살피는 것이 반목회 사역에 대한 최상의 놀이진행요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분주하다 할지라도 가정방문의 목적과 효과를 최대로 거둘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야 하겠습니다. 시간 및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어린이들의 사정을 알아보고 격려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수립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린이 사역자들의 가정방문에 대한 확장 프로그램은 전화, 엽서, 서신 등에 의한 심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엽서에 의한 심방에 대하여 알아 봅시다. 교사는 한 주간 중에 어린이들의 가정으로 엽서를 써서 보냅니다. 이때, 엽서의 내용으로는 출석을 장려하는 것과 결석이 어린이의 신앙생활에 초래하는 나쁜 결과를 분명하게 알려 주어서 결석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주일학교에서 전체 어린이들이 있는데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와 개인적인 돌봄 관심을 나타내는 이야기를 써 보내도록 하면 좋겠지요. 그리고 다음 주일의 집회시간에 꼭 만날 것을 약속하는 내용으로 씁니다. 이어서, 전화를 이용하는 심방에 대하여 살펴 봅시다. 전화에 의한 방문은 한 주간의 주말쯤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교사는 한 주간 동안에 자신이 맡고 있는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오다가 금요일 오후나 토요일 오후에 그들의 가정으로 전화를 합니다. 이 전화를 이용해서 한 주간의 안부를 물어 교사가 어린이에게 관심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 보여 줄 수 있지요. 이 전화에서는 꼭 교사가 어린이를 향하여 기대를 품고 있음을 보여 주도록 합니다. 그리고 격려와 함께 출석을 독려해야 하겠습니다. 4. 열린 교실을 만드십시오. 어린이들을 주일학교에서 내쫓는 최선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주일학교가 지루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루함을 느끼면 아무리 붙잡아 두려고 해도 견디지 못하고 뛰쳐 나가고 말겠지요. 따라서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교사의 학급운영이나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주일학교에 새로운 연출이 없이 늘 똑같은 반복이 거듭되고, 매너리즘에 빠진다면 어린이들을 지겹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교실의 분위기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교사는 학급의 운영에 새로움을 부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동적인 학급이 되도록 늘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교사가 성경공부를 시작하려 할 때 어린이들이 하품부터 한다면 그들을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가십시오. 그래서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면 금새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을 느낄 것입니다. 사람이 참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지루함 아닐까요? 어린이들은 쉽게 지루해 합니다. 똑같은 수업이라도 학습의 방법에 변회를 주고 순서를 바꾸어서 진행해 봅시다. 학급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변화에 대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교사의 복장에서 변화를 연출해 보십시오. 여교사들 경우에는 상의 주머니에 밝은 색의 스카프를 꽂으시십시오. 어린이들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이와 같은 생동하는 스타일은, 교사는 물론 어린이들에게 생동적인 태도를 지니게 합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기대를 품게도 하지만 지루하게도 합니다. 매주일의 성경공부가 창조적이지 못한채 '반복되는'공부의 시간으로 비쳐질 때 그 공부는 지루산 시간이 되고 말겠지요. 교수에 임하는 교사나 학습에 임하는 아이들 모두가 의욕없이 모여앉게 될 것입니다. 공과공부는 교사의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공과공부의 진행에 대한 주도적인 역할(Leadership)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는 공과공부의 시간을 창조해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분반 사역자의 리더쉽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고, 공과공부의 진행에 있어서는 주도권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의 공과공부 '교실환경'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생동감이 넘치는 학습의 자리를 만들 수 있읍니다. 우선 내 마음에 "만일 내가 성장을 원한다면 나의 교실은 결코 침체되거나 판에 박힌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새겨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노력해야 아이들의 성장을 가져 옵니다. 그리고 성장의 자리에는 생명력과 활동력이 넘치기 마련입니다. 여기에서 꼭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당신의 공과공부를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지요. 이 맡김 속에서 소망을 품으십시오. 사도 바울의 말은 우리에게 격려를 줄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 1.3). 1) 공과공부의 진행을 창조적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나이가 어린 쪽으로 내려갈수록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쉽게 지루함을 느낍니다. 가령, 어제 좋아했던 그림책을 오늘은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다르지요. 그래서 어제 좋아했던 그림책을 오늘도 아이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반갑게 여기며 책의 뚜껑을 열어야 할 어린이는 시무룩해 합니다. 그러자 교사가 묻습니다. "아니 왜? 어디 아프니?" 어린이가 생각하기에는 교사가 엉뚱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그림책을 보라고 주더니, 이제는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른들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그러나 어린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요. 당신의 공과공부가 재미있는 시간이 되기 위해서 당신은 늘 새로운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매주일 반복되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저학년의 어린이에게 일수록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공과공부의 교실이 언제나 새 교실이 되게 해야 합니다. 공과공부를 진행하는 방법과 가르치는 교육기술, 그리고 학습의 교구교재 등에 다양한 변화가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보여 주는 수가성읍의 우물가 그림 한 장도 '새 교실'을 만드는데 톡톡한 역할을 합니다. 2) 이치에 맞는 말을 해야 합니다. 어린이들의 생각이란 단순합니다. 그들은 거의 단답형의 생각 속에서 말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ㅓ그들에게는 비유 또는 연역이 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교사의 말은 언제나 쉬운 표현 속에서 분명한 것이어야 합니다. 르바(M. E. Lebar)와 릴리(B. A. Riley)가 소개하는 이야기는 교사의 말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사로서의 경험이 부족했던 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 주려 했을 때의 사례입니다. 기억되는대로 소개하겠습니다. 그 교사는 아침부터 목이 아팠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기침을 하고서 말을 꺼냈는데, 기침하던 자신의 모습이 미안해서인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미안해요. 선생님의 목에 개구리가 걸렸나봐요." 교사의 말에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언제 선생님의 입에서 개구리가 튀어나올까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르바와 릴리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 상황을 생각해 보라. 어린이들이 성경이야기를 얼마나 잘 들었다고 생각하는가? 어린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더 듣고자 했을까?" 개구리가 목에 결렸다는 이야기는 틀림없이 유모어일 수 있습니다. 무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재치있는 말로서 전환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의 사고능력에 따라 이해하기 때문에 정말로 선생님의 목에 개구리가 걸린 것으로 알아들어 혼란이 초래될 수 밖에 없지요. 어린이 들에게 말할 때는 분명하게 들려지도록 해야 하되 이치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로써 아이들은 교사의 말을 분명히 알아듣고 공과공부에 의욕을 보이게 됩니다. 3) 교수-학습에 참여한 아이들을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미국의 어린이전도협회에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한 사역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 "나는 코네티컷주의 브릿지포오트시에 있는 교회의 많은 선생님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나를 격려하고 도전을 주고, 훈계하고, 가르치고 훈련시키셨다. 오늘날 나는 되돌아보건대 하나님께서 나를 믿음안에 세우시기 위해 그 선생님들을 사용하셨음을 안다." 아이들은 교사로부터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늘 교사의 격려 속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키우며, 말씀 안에서 자라가는 것을 지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언어로 어린이를 훈련시킬 수도 파괴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 미래의 어린이을 만들수도 망칠수도 있지요. 그러므로 아이들을 격려하는 교사가 되려는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작업을 권고합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당신은 다음의 보기들을 읽고 스스로와 자신의 가르치는 사역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먼저 자신의 말에 대하여 체크해 봅시다. 당신이 어린이들을 격려하는 말의 사용을 가장 잘 나타낸 번호에 원을 그려보십시오 (1=절대 사용 안함 5=거의항상 사용함) 1. 나는 나의 어린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한다. 1 2 3 4 5 2. 나는 나의 어린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1 2 3 4 5 3. 나는 어린이들의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다. 1 2 3 4 5 4. 나는 나의 어린이들에게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1 2 3 4 5 5.나는 어린이의 노력과 발달에 기대를 걸고 인정한다. 1 2 3 4 5 6.나는 칭찬할 때 수식어 사용을 피한다. 1 2 3 4 5 7.나는 격려하는 말에 후하다. 1 2 3 4 5 우리는 이와 같은 확인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을 향한 '나의말에' 대하여 교정해야 하겠다는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하겠다는 사실을 인식했음을 말합니다. 이제, 두번째로 무엇이 격려하는 말인지 살펴 보고 자신의 말을 바꾸도록 합시다. (1.) 수용을 표시하는 표현들을 사용한다. ."나는 네가 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네가 우리반에 와서 기쁘구나!" ."너는 이것이 즐겁지 않은 것 같구나. 다른 것을 골라 보자." 해서는 안 될 말:"너는 우리 반의 오죽자처럼 할 수 없니?" "뭐가 문제니?" (2) 자신감을 보여주는 표현들을 사용한다. ."너는 그것을 해낼거야! 나는 네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힘든 작업이야. 그렇지만 네가 최선을 다할거라는갈 알지." ."너는 열심히 하는구나!" 해서는 안 될 말: "너는 반에서 가장느린 아이야. 이정도로는 결코 끝내지 못할거야!" (3.) 기여도와 장점과 존중에 초점을 맞추는 표현들을 사용한다. ."네가 우리 노래의 가사를 기억하다니 고맙구나." ."네가 아는 나누는 법을 알려 주었구나." ."가위들을 모두 치워줘서 고맙구나." ."너는 우리반을 정다운 장소로 만들어 놓는구나." 해서는 안 될 말:"네가 그린 개는 소같구나. 다시 그려라." (4.) 노력과 발달을 인정하는 표현들을 사용한다. ."네가 오랫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한 것을 알겠구나." ."너는 앉아서 이야기 듣는 법을 아는구나." ."네가 해낸 것을 보아라! 너는 그과정을 마쳤어.." 해서는 안 될 말 :"아직도 못 끝냈어?" "너는 그것도 배우지 못했니?" 5. 부끄러움이 없는 반목회자의 자격을 갖추십시오. 반목회자에게는 반목회라는 직무의 수행을 위하여 요구되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운전사가 자동차를 달리는 사람이지만 거리 곳곳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양떼를 돌봄에 있어서 갖추고 있어야 하는 자격이 있는 것이지요. 이 자격은 교사의 역할을 만족스럽게 수행하도록 하며, 아이들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신앙의 기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반목회의 본질적인 대상이 되는 사항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반 목회자가 될 수 없습니다. 2) 인격을 갖춘 사람- 기본적인 기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사역을 맡기신 만큼 사람의 인격에 따라 하나님의 일이 드러납니다. 어느 의미에서 분반사역은 교사의 인품에 제한을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사는 분반의 아이들에게 사표(Pattern)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는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그의 인격이 모방할 만한 가치를 지닌 인격이 되도록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목회라서 그의 인품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도 바울과 같이 '나를 본받으라(고전 11:1)"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본받을 수 있는 인격을 지녀야 해요. 3) 하나님의 사람- 영적인 기준 반목회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식은 하나님에 대하여 헌신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어요. 영적인 기준을 살릴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데, 반목회를 위하여 봉사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께 사로잡혀 있느냐'하는 것이지요. 6. 주일학교의 부흥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자람을 보여 주신 사실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성장에 대하여 예수님이 보여준 것은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는 사실이지요. 예수님의 자람에서 보여 준 성장은 주일학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성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야 한다. 그렇다면 자라는 아이들의 공동체는 어떠한가요?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그들의 공동체도 성장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교회의 성장을 이와 같은 원리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유기체의 연합인 주일학교 공동체는 살아있는 기관이므로 성장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유기체라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성장을 경험해야 하고 응당 성장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교회를 이루는 우리들이 성장하기 때문에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또는 주일학교 공동체의 성장을 말할 때 부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들의 교회가, 주일학교 공동체가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성경에서 그 원리를 발견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일학교의 성장을 꿈꾸면서 함께 고민해 봅시다. 1) 주일학교의 부흥을 소망해야 합니다. 함께 하박국 3 : 2 하반절을 읽어 볼까요? 하박국 선지자의 심정을 품어 본적이 있으신가요? 이제,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 자신이 간구할 수 있는 나의 기도를 써 봅시다. : 2) 주일학교의 사역현장에서 내게 맡겨진 '순서'에 대한 부흥을 기대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을 폅시다. 그리고 19-23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말씀이 내게 무엇을 도전하고 있나요? 본문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나의 다짐을 써 보았으면 합니다 : 3)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주일학교의 사역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루어지며, 성령이 충만한 분반과 주일학교가 되게 해야 합니다. 함께 사도행전 1 : 8을 찾아서 읽어 봅시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나타나는 사역의 방향에 대한 고찰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겸손한 자세로 나의 기도를 써 봅시다. 4) 세상에서의 교회가 지닌 의미를 생각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교회는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교회의 일차적인 의미를 복음전도에서 바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학교의 관심도 전도 및 선교에 주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무어라 가르치고 있는지 마태복음 28 : 19-20을 읽어 봅시다. 본문을 묵상하는 가운데, 전도와 관련하여 나의 전도대상자의 이름을 써 봅시다. : 5) 주일학교의 부흥을 원한다면 부흥을 위한 수고의 지불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법칙은 심어서 거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두어들이기 위하여 즐겨 심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은 심고 거두는 원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펴서 18-22을 읽어 봅시다.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혹시 내가 버려야 할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찾아 봅시다 : 6) 주일학교의 부흥은 부흥을 바란다고 해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주일학교의 모든 사역자들이 부흥을 꿈꾸고 부흥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사도행전 16 : 9-10은 우리에게 부흥을 꿈꾸도록 합니다. 함께 읽고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따라서 나의 환상을 그려 봅시다 : 7) 주일학교의 사역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기셔서 맡기신 것입니다. 일을 맡은 사람의 비전은 늘 충성하는 자신에 대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순종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함께 창세기 6 : 13-22을 찾아 보기 원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묵상한면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주일학교의 사역에 대하여 살펴 보기 바랍니다. 이어서 구체적으로 써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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