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26:15)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26:15)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사울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그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16:25)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시52:7)
이것은 도엑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다윗이 한 말이다.
그는 사울의 목자장으로서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울을 도왔던 자이다.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삼상22:18,19)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일이 잘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칭찬할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자취하는 것과 같다.
바울도 어떤 면에서는 도엑과 같았다. 예수를 대적하는 것이 자신의 신앙을 바르게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길이 사망의 길임을 생각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울은 그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세례요한은 옥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11:2-3)
요한은 예수님께 대하여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가 맞습니까? 이것이 그의 의문인지, 그의 제자들의 의문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11:4-6)
예수님은 자신이 하는 일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예수님 그대로 인정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그대로를 보고 믿는 자가 복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예기치 않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이 섬기는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셨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상한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착각이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 그는 이미 실족한 것과 같았다.
이것은 비단 바울에게만 일어나는 모습이 아니다.
어떤 만화가가 크리스마스에 한 삽화를 그린 적이 있었다.
예수님과 어떤 거지가 큰 교회 밖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찬송소리가 나는 교회는 흥겨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거지와 예수님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거지는 자기가 교회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이에 예수님도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도 쫓겨났소..
하나님을 만남에 있어서 연약한 모습이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가 있다.
물론 이사야가 만났던 하나님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사6:2-4)
이나, 욥이 만났던 하나님,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38:1,2)
요한이 만났던 하나님,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계1:16,17)
등등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 앞에 엎드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꼭 하나님은 이런 모습으로만 나타나신 것은 아니다.
엘리야가 만났던 세미한 음성이나, 바울이 만났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며 바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강도가 만났던 예수님이 그러하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여호와의 응답으로 불을 내리는 이적을 행한다. 그리고 바알과 아세랴 선지자들을 죽인다. 하지만 이세벨의 경고에 그는 호렙산으로 도망하였다.
하나님은 그 곳에서 엘리야를 만나신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19:11,12)
엘리야는 바람, 지진, 불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다.
엘리야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적 가운데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기적은 만나는 것이며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기적 가운데만 계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기적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기적은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지 하나님 자신은 아니시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6-29)
이적은 표지판이다.
우리는 표지판을 목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의 이것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않고 하나님께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이것이 식상할 때가 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이 없는가하고 찾을 수 있다.
말씀만을 생각하자면,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난다는 것이 그다지 큰 충격이나 기쁨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았고 따랐다. 그리고 그들은 구약의 말씀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성경이 말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3,4)
성경의 말씀은 그저 책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그냥 대하는 나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깨닫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친구 교회에 놀러 갔었는데 그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여호와가 가라사대라는 말이 되풀이 된다는 글을 보았다. 이 말은 왠지 모르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것도 말씀에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위를 힘입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4-27)
하나님은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증인이 되어 자신을 증명했다.
우리가 좋은 말씀을 들으면 누가 그 말을 했는가를 찾고 물어보게 된다. 만약에 그 저자가 거짓말장이거나 사기꾼이면 그 다음 부터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좀처럼 가지기 어렵다.
성경에 대한 신뢰를 보내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예기치 않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하나님은 자신의 조상들이 섬기던 하나님이며 자신이 율법에서 배웠던 그 하나님이셨다.
그 하나님을 자신이 핍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자신이 사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음을 알았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와 늘 만나시며 동행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히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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