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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벧후1:6)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그리고 경건, 당연한 말 ...

by coixn  /  on Aug 22, 2010 18:5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벧후1:6)

 

믿음, , 지식, 절제, 인내 그리고 경건, 당연한 말 같지만 이것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

이것들 전부가 우리가 그리스도인, 혹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말들이다. 모두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다른 것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절제는 이러한 지식이 삶으로 나타날 때 필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인내는 하나님의 약속, 즉 하나님을 붙들고 있음에 대한 증거이다.

오늘 주제인 경건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태도 혹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요점은 경건은 외적으로 나타지만 중요한 것은 내적인 마음가짐이다. 그렇다고 외적인 것은 무시하고 내적인 것만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니다. 외적인 겉이 좋아 보여도 내적인 것이 좋지 않을 수 있지만, 내적인 것이 좋으면 외적인 것은 좋을 수 밖에 없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7:15-18)

형식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는 내면을 바르게 해야 한다.

이처럼 경건은 형식을 갖추어야 하지만, 형식을 담는 내용도 중요하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8:10-13)

 

여기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은 세리이고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은 바리새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바리새인이 평소에 했던 일을 본받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다. 또한 세리가 했던 일 즉 세금을 포탈하고 동족을 착취하는 일을 본받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형식도 중요하다. 이것이 외식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11:42)

 

경건의 내적인 것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은 우리가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 앞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때 생기는 덕목이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3:16)

경건의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건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을 다른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딤전03:16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해답은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성령께서 그분의 흠없고 순결함을 입증하셨으며 천사들에게 섬김을 받으셨고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 온 세상 사람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고 다시 하늘의 영광에 싸여 승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경건할 수 없다. 경건의 모양은 갖출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런 경건에 도달하지 못한다. 형식은 갖출 수 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바라는 형식이 아니라 겉만 흉내 내는 외식이 된다.

이것을 재차 말하는 이유는 경건은 형식을 갖추고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겉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도 보시기 때문이다. 경건이라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 보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우선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건한 자가 있다면,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오해하기 쉽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서로 서로가 겉모습을 포장하는 것에 익숙하다.

성경은 경건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5)

 

경건의 모양만 갖출 수 있다는 것이며 경건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건에 대하여 이렇게 잘못 이해하면서 경건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에 있다.

사람들 상대할 때 행동에 대한 것은 즉각 즉각 반응이 온다.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행동은 바로 반응이 오는 것이 아니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이 백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8:11,12)

 

경건을 마치 신앙생활을 포장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짓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성향과 하나님의 성향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에 대한 회의를 들게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 삶의 지혜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52:7,8)

하나님 없이도 잘 살 것 같다는 착각은 하나님으로 부터 우리를 배반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배반했다. 정당한 이유라고 있으면 우리가 당당할 것인데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착각이며 우리들의 무지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이렇게 주인에게 항변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엄한, 거친)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25:24,25)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주인의 은혜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착각 속에서 살아왔다. 주인과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종이 주인을 대적하면 종에게 남은 것은 독립이 아니라 멸망이다.

말라기에는 지금의 세대와 비슷한 불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3:13-16)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반응이다.

문제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해결책이다. 우리들의 문제는 우리들에게 아무리 집중을 해 봐야 나오지 않는다. 해결책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이다.

경건은 우리들에게서 나오는 고상한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앎으로 나오는 태도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우리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계신다.

 

경건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제대로 대하는 태도이다.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경건하게 사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또한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경건하게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 유익이 되어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르게 가고 있음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부모님이 자식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은 그 자식으로 인하여 덕 볼것을 생각하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잘되는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려 먹는 나쁜 주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주시는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사랑이며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즉 하나님이 나에게 먼저 요구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역시 하나님이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바울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시며 이 세대의 어느 누구 만큼 나를 사랑하신다.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21:21,22)

우리의 관심은 다른 사람들이 은혜를 얼마나 받고 있고 어떤 능력을 행했는지가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 즉 바울이나 신앙의 선배들처럼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만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경쟁하라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받은 사랑에 대하여 반응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경건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1:26,27)

 

이웃을 섬기 것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15:1,2)

 

이웃을 섬긴다는 것은 그들의 약점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약점을 담당한다는 것은 약점을 보살피고 돌본다는 말이다.

경건함에 이웃에 대한 섬김과 사랑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한다. 즉 자기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5-18)

 

경건한 자의 특징은 감사한다는 것이다. 경건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경건은 감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20)

이른바 우리가 주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회에 잘 나오는 것과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일을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3:22-24)

 

결론적으로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이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마음자세라고 말할 수 있다.

경건은 형식과 내면 둘 다 중요하다. 내면이 바르게 하나님을 대하고 있다면 형식은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경건은 내가 하나님께 대한 태도, 즉 삶의 자세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고상하고, 거룩한 척, 경건한 척 하는 것이 아니다.

경건은 우리들에게서 나오는 고상한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앎으로 나오는 태도이다.

예수님은 경건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가까이 계셨다. 성경의 많은 인물중에 가장 경건하신 분은 그리스도셨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는다면 우리도 경건한 자가 된다.

경건한자의 특징은 감사하는 자이다.

이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감사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는 자이다.

 

 

Me2day Yo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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