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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벧후1:6) 절제라는 말은 자기 통제력이라는 말로 대신 할 수 있다...

by coixn  /  on Aug 08, 2010 20:57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벧후1:6)

 

절제라는 말은 자기 통제력이라는 말로 대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절제를 즐거움의 유보라는 조합으로 사용했다.

분명 너는 절제를 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을 때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무엇인가를 끊어야 할 것 같고 그만 두어야 할 것 같다.

학생들에게 절제하라고 하면, 게임을 하지마라, 텔레비전을 보지 마라, 놀지 말고 공부해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절제라는 단어는 몇 번 나오지 않는다.

절제는 자기통제 내지는 금욕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어떤 곳에서는 술을 금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베드로 후서의 단어는 세 번 등장한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24:25)

여기에서 바울은 절제에 대하여 강론을 했는데, 벨릭스는 탐욕스러운 자였고 더욱이 지금의 부인과는 불륜의 관계였다. 그것을 바울은 복음에 의거하여 강론하고 있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또한 절제는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

믿음, , 지식, 절제 이 단어들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단어들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 주는 것들이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에 의하여 맺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드러내어야할 삶의 열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지식에 절제를 더해야 하는가?

우리가 알고 싶은 지식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우리가 평생 목표이기도 하다. 이 지식을 아는 데 있어서 절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우리가 평생을 노력한다고 해도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을 알아감에 있어서도 평생이 걸린다. 아니 평생으로도 모자랄 수 있다. 사람이 쌓은 지식도 우리의 짧은 지식으로 알기 어려운데 하나님을 아는 것에 넘침은 있을 수 없다.

아담이 타락을 하지 않았다면 계속 하나님을 알아갔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우리가 앞으로 천국에 가서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9:10)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일반적인 지식과는 다르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8:1,2)

세상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할 수 있다. 이 지식이 곧 자신의 능력이나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하나님은 많이 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이 지식에 따라 살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로마서 2장에서 바울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일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 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2:17-24)

하나님의 자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모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도 일종의 특권이다.

이것은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지식에 따라 살지 못할 때, 그리고 그 지식이 요구하는 일은 행하지 못할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행동이 된다.

그는 말을 했을 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뜻에 의하며, 등등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것을 가르쳤고 하나님의 이름에 의하여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에 반대되는 행동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힐 수 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안다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도달하기도 힘든 지식을 절제할리는 없다.

그렇다면 지식에 절제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지식 자체에 절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 지식을 더한 자로서 삶을 드러날 때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5:16-18)

하나님의 뜻과 죄악은 서로 반대이다. 이것은 타협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신분상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답게 완성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절제, 즉 자기 통제력, 혹은 즐거움에 대한 유보이다.

세상의 사람들도 절제함 없이 이루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5-27)

운동선수 중에서 자기가 할 것 다하고 자기가 먹을 다 먹고 운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을 하는 것은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며 대신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절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첫번째는 서로에 대한 불평을 절제해야 하고

두번째는 탐욕을 절제해야 한다.

첫번째는 서로에 대한 불평이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3:13)

서로에 대한 불평을 절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관계에 있다.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참으셨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참으셨기에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먼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면 은혜를 받은자처럼 행동하면 된다. 하나님이 나를 참으시는 것처럼 참으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19-21)

언제까지 용납하는 것은 그가 죽을 때 까지이다.

하나님도 사람에 대한 심판을 언제까지 유보하시는가 하면 죽을 때까지 유보하신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도 그 사람에 대하여 성급하게 판단을 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물론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하여 반하는 말이 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성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천국 비유를 말씀하셨다.

비유의 본래 의도에 조금은 벗어나지만, 끝까지 용납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12:24-30)

알곡과 가라지는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알곡과 가라지는 섞여 있다. 우리는 누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아실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 대한 심판을 유보하신다.

하나님의 태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서로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누가 알곡이고 가라지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판단은 그 사람의 현재를 보고 판단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하나님이 용납하신다면 우리들도 용납을 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판단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끝까지 가룟유다도 사랑하셨다.

 

두번째는 탐욕에 대한 절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절제해야 하는 것은 탐욕이다. 이것은 지족하는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6-8)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5)

이것은 없는 상태를 만족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하여 만족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만족하라는 것은 가난하라는 것이 아니다. 또한 부유해지라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완전한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다.

 

이런 예화가 있다.

성을 점령한 적의 장군이 성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이 성 내에 있는 부녀자와 어린이는 가장 귀중한 보물을 한 가지만 가지고 오늘 자정안으로 나가라."

이 명령을 들은 부녀자와 어린이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보물 하나씩을 들고 남편이, 아빠가 적의 칼에 숨질 것을 생각하면서 통곡을 하며 성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한 여인이 집의 보물은 하나도 들지 않고, 자기 남편을 업고 성문을 빠져 나가려고 했다.

"담도 크구나. 너마저 죽고 싶으냐?"

그러자 여인이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장군께서 약속하시기를 '가장 귀중한 보물' 하나를 들고 나가라고 했지 않습니까? 제가 업은 이것은 장군에게는 하찮은 것이오나 제게는 가장 귀중한 보물입니다.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그러자 장군은 그대로 보냈다고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있다면 세상의 헛된 것에 탐욕을 품을 사람을 없을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버리고 동전 몇 푼을 취하고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재물로서 그리스도를 가질 수 없지만, 그리스도로 인하여 재물을 가질 수 있다. 권력으로 그리스도를 가질 수 없지만, 그리스도로 권력을 취할 수 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그리스도를 가질 수 없지만, 그리스도로 인하여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2:2,3)

 

결론적으로

우리가 절제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자 함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데 절제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것과 탐욕에 대하여서는 절제할 필요가 있다.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16:19)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14:20)

 

절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다면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취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3:7,8)

Me2day Yo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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