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16)
성경이라는 책이 있다.
베스트셀러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여러가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분명 사람이 손으로 썼을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한번을 읽는 것을 목표로 삼는 책이다. 그리고 10번 정도를 보면 다 알 것 같다는 미묘한 자신감도 생긴다. 사실 이 책을 평균적으로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3일 즉 72시간 정도이다. 1189장과 66권으로 이루어진 책을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읽어라고 강요당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심히 난해하거나 단계를 차근 차근 밟아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창세기를 알아야 출애굽기를 알고, 출애굽기를 알아야 레위기를 알고, 그리고 마지막에 요한계시록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예수를 믿어 구원 받으라가 주제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도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세례요한이 누군지, 사도요한이 누군지, 예수님의 아버지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할아버지는, 야곱이다.
주제도 대충 감을 잡는다.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풀어야할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너무나 쉽게 보이지만, 만만치는 않는 책이 바로 성경책이다.
1번도 완독하지 않아도,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알 수 있지만, 100번을 읽어도 이해를 하기 힘든 책이다.
이러한 모순을 지니는 것은 성경은 가상 공간의 일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을 다루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보이는 피상적인 상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내면과 실제를 다룬다. 성경은 우리들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복잡한 것 처럼, 우리들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 처럼 성경도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분명한 것은 성경은 사람의 사상이 아니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의 논리나 이성이나 생각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6)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4:2)
그리고 성경은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다른 책들과 같이 해도 되도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해야 한다. 하지 않을 자유도 있지만 그것에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고 경고를 한다.
이것은 행운의 편지처럼 누군가의 장난처럼 웃어넘길 것이 아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과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 말씀은 머리와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관계되어 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행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믿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믿는 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과는 다른 말이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4-17)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예배한다, 성경 말씀을 본다, 기도를 한다로 증명이 되고,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죽으신 분이 아니라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말씀을 읽다보면 부담스럽다.
위의 말을 이렇게 말하면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사랑하십시오. 사랑하세요.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우리들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성경은 낭만을 이야기 하지만, 댓가가 없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단어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말하는 은혜가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은혜,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은 너무 값이 있어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이지 가격이 너무 싸서 아무나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가장 귀한 아들을 희생시키셨다.
우리들이 자주 듣는 십자가도 고상한 단어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십자가라는 단어를 들으면 고상하고, 아름답고, 거룩하기 까지 하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는, 엄밀하게 따지면 듣기에 거북한 단어이다.
십자가는 저주를 상징하고, 죄를 상징하고 심판을 상징한다. 이것은 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패션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장면보다 더 끔찍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을 것이다.
이런 단어가 고상하게 생각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죄사함과 사랑을 상징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3,24)
이와 같이 사랑이라는 단어도 낭만적이거나 고상하지만은 않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신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감격해하거나,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감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은 그 단어에 무게와 희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단어를 그냥 고상하게만 듣지 않는다.
오늘 말씀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말해 주고 있다.
사랑은 한 마디로 목숨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라는 것이며 아낌 없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짊어지셨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우리들을 이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불가능한 것을 우리들이 완수해 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며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물론 이 말을 들을 때 약간은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성경 말씀대로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경은 우리들의 힘으로만 이것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모든 것을 행하기를 원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기 앞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다.
하나님은 죽으신 분이 아니라 살아계신 분이시고 지금도 우리들을 지켜보시고 돌보시는 분이시다.
성경의 모든 단어의 시작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말은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 진정한 뜻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서 시작하여 믿는 것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른다거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무시하는 것과 똑같다.
수학에서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를 못하면서 수학의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없다.
어려운 문제를 요행히 맞출 수는 있을 지언정, 수학의 즐거움을 가지지는 못한다.
신앙에서도 예수님을 모르거나 믿는 것을 포기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알아야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우리가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성경의 인물들이 항상 찾았던 것은 해법이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에스더서의 에스더가 위기 상황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왕의 명령이나 왕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셨다.
에스더는 왕께 나아가기 위하여 금식을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금식을 했다.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에4:15-17)
요한복음 3:16과 이 구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은 쌍둥이다. 이 말은 똑같은 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우리들을 멸망시키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다.
이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헌신이요 희생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사랑을 요구하신다.
예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신 것 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요구하신 것 이상으로 사랑하셨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10:27)
하나님이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우리들을 사랑하신 것이다.
우리는 요일3:16의 부담스러운 명령 앞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성경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고 희생을 알아야 하고 의도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예수님을 아는 자들이 다음의 말씀도 알 수 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다음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6-18)
우리들이 교회를 이루는 것은 모임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예수님과 하나님의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중심이 되면 이 모임은 하나님이 할 일을 지켜보는 복된 모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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