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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

by coixn  /  on Feb 17, 2010 23:16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행21:28)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형제들의 영접을 받았다.

그는 야고보를 비롯한 장로들에게 자신의 일을 보고 하고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바울에게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오해하고 있음을 말했다.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행21:21)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배반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배반하라는 말과 비슷했기에 유대인들은 바울을 배교자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지 말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다. 바울은 할례에 대하여도 적극적인 반대를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행15:1)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5:2-4)

 

다만 할례를 행함으로 구원을 완성한다거나, 할례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자랑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십자가는 율법만 중시하는 자들에게는 걸림돌이다. 십자가가 하나님으로 부터의 저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에서 십자가는 인간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례로 인하여 자신들의 선택받음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걸림돌이요 고난과 핍박의 대상이었다.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 뿐이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갈6:12,13)

 

바울은 율법의 할례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할례의 정신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2:28,29)

 

이 말은 예레미야도 강조했던 말이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4:4)

 

사람들은 바울에게 유대인의 오해를 풀 수 있는 한가지의 방법을 권면했다.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행21:24)

 

이것의 예는 민6:1-21에 나와 있다.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자들의 비용을 바울이 드리라는 것은 유대 사회에서 매우 경건한 행위로 여겨졌다.

 

그는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년 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속죄 제물로 일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제물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민6:14,15)

바울이 돈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임을 보여 주라는 것이었다.

바울이 이 말대로 결례를 행하여 마지막날이 되었을 때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 소리쳤다.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행21:28,29)

 

그들의 고소 제목은 우리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정을 자극할 만한 것이었다.

거룩한 곳을 더럽게 만들었다는 것은 거룩한 곳을 평범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평범하게 만든 것은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왔다는 것을 말한다.

성전에는 출입할 수 있는 곳과 출입할 수 없는 곳이 정해져 있었다.

성전에는 유대인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과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바깥 뜰'(이방인의 뜰)이 구분되어 있어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뜰'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것은 로마 당국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종교적 금기(禁忌)였다. 만약 이방인이 이 금기를 어기고 '이스라엘의 뜰'에 들어갈 경우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양쪽 뜰을 가르는 울타리에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는데, 울타리를 넘어 침입해 들어가는 자는 사형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것은 성막을 지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민18:22,23)

장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장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민1:51)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민3:10)

너희는 고핫 족속의 지파를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게 말지니 그들이 지성물에 접근할 때에 그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너희는 이같이 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각 사람에게 그 할 일과 그 멜 것을 지휘할지니라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 것은 죽을까 함이니라(민4:18-20)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히9:7)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은 하나님의 용납하심이 있어야만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경외심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께 나올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처럼 되었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계1:17)

 

바울도 그러했고 베드로도 그랬다. 누구나 하나님의 나타남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자가 없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당연하게 나온다고 해서 우리들의 본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아버지라면 우리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 만의 율법을 계속 고수 하고 있었다.

유대인들 넘을 수 없는 구역을 넘었다고 여긴 바울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신들의 노력으로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7:6-9)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형식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빠진 형식은 아무런 능력이 없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

그들이 성전의 경계선을 정해 놓은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계승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기 위함이었다. 이 경계가 사람들을 판단하고 죽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막으신 것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그 벽을 허물어 버리셨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2:14)

 

결론적으로

할례나 거룩한 곳을 만드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잘 섬기기 위함이었다.

할례나 성전의 경계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성찬에서 우리들이 은혜를 받는 것이, 성찬 자체가 거룩하다거나, 성찬을 인도하는 사람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도우심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은혜를 받는 것과 같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5-18)

 

 

Me2day Yo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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