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행21:14)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고...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행21:14)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
그곳은 기회의 땅이 아니라 자칫 하면 자신의 무덤이 될 수도 있는 땅이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그곳이 마지막 여행지였기 때문이 아니다.
예루살렘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거쳐 가는 곳이었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행19:21)
로마로 가는 비전이 있었던 바울이 굳지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던 것은 두 가지의 이유로 추측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15:25,26)
기근으로 고생하는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하여 이방인들의 헌금을 전하여 주기 위함이고
이것을 계기로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 자매임을 알게 해주고하 함이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이 일은 바울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있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2-24)
성령께서 어려운 일은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길이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그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았다.
주님의 뜻이라고 해서 평탄한 삶이 보장된 것이 아니다. 주님의 뜻은 주님이 원하는 길이다.
우리들이 주님을 뜻을 행한다면 평안할 수는 있겠지만, 고난이 있음을 예상해야 한다.
운동선수들의 연습을 통하여 자신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듯이 우리들 역시 연습을 하여야 한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다.
자기 부인은 내 뜻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 평안과 고난이 함께 하는 것은 이미 여러 곳에서 바울이 자신의 몸으로 증거한 바이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9-10)
바울은 아시아로 가고자 했으나 주님이 원하지 않아서 주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바울은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다가 빌립보 감옥에 매를 맞고 투옥이 되는 사건을 맞이한다.
루스드라에서는 걷지도 못하는 앉은뱅이를 고쳐주었다가 신으로 추앙을 받을 뻔 했으나 그는 그것을 거절 했다.
그런 후에 바울은 돌로 맞아 죽을 뻔 하기도 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22)
바울이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했기에 따르는 핍박이었다. 경건이라는 것은 곧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5-27)
주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들의 편안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들이 잘 살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다. 잘 살 수 있을지 잘 살수 없을 지에 대한 확신은 할 수 없다. 다만, 바르고 거룩하게 살 것이라는 확신은 할 수 있다.
그렇게 계속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다.
가이사랴에서 그는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자신의 앞날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바울은 예전부터 자신이 어떻게 될 줄을 알게 되었는데, 예루살렘에 가까워질수록 바울의 동역자들은 바울을 만류하고 싶었다.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 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21:10-13)
사람들은 바울을 말릴 수 없음을 알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을 했다.
바울은 실제로 이방인의 손에 넘겨졌지만, 그 이방인들에 의하여 로마로 가는 자신의 비전을 완성하게 된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27:24)
주님의 일은 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망하지 않는다.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행7:29,30)
모세에게 있어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간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인생은 미디안에서 시작이 되었다.
미디안에서의 40년 훈련이 모세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26:22)
그랄에 우거하던 이삭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땅에서 거부가 되었다. 그랄의 지도자 아비멜렉은 이삭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떠난 이삭은 우물을 팠지만, 다툼은 계속되었다.
에섹(다툼) 싯나(대적)으로 이름을 짓고 떠났다.
그리고 다투지 않았으므로 르호봇(장소가 넓음)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 지라(창26:24)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26:28,29)
이삭의 어리석게 보이는 대처가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었고 하나님과 함께 함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이삭은 세상을 따르지 않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평안과 고난은 함께 할 것이다.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 즉 경건하게 사는 것의 최대 유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지체되는 것처럼 보이고 망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 지라도 그것은 지체하지도 망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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