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현대인의성경]행 20:32
이제 내가 하나님과 그의 은혜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의 믿음을 든든히 세우고 모든 성도들이 얻는 하늘 나라의 축복을 여러분에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행20:16-18)
바울은 그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다. 그리고 몇 가지 부탁할 것을 그들에게 말하고 자기의 심정도 말을 한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2-3)
하나님께서 교회에 사람들을 세운 것은 섬김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본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교회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듯이 은혜로 감당해야 한다.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며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19-21)
우리가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당연한 것은 우리가 먼저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섬김으로 주님께 다시 무엇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우리들을 강권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으로 에베소 장로들과의 만남을 마무리 한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주님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을 하신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막10:8)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에 주님께 받은 것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능력에 맞는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에 맞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들의 능력에 맞게 주님께서 일을 맡기신다면 우리가 맡을 일이 아무것도 없다.
주님의 일에 맞는 능력을 주님이 주시기에 우리들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주의하고 해야 할 일을 권면하기도 했지만, 바울은 그들이 의지해야하고 바탕과 원천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있음을 말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온전히 맡겨야 하는 대상은 그들의 행동이나 습관이 아니었다. 또한 바울의 정신이나 바울의 뜻이나 바울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들이 온전히 의지해야 하는 것은 바울이 언제나 의지하는 것과 같았다.
에베소 장로들은 바울이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아야 했다.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전1:12,13)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전3:4-7)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이 충고한 것처럼 그들은 바울을 바라보지만, 바울에게서 마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다.
마치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만 주목하면 안되는 것과 같다.
우리들이 사람들을 섬기는 것 역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가리키기 위함이다.
바울은 그들을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부탁을 하고 있다. 그것이 가장 확실하기 때문이다.
주님이 자신을 돌보셨듯이 그들을 돌보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진 믿음이이다.
창세기의 야곱과 요셉도 자신들이 그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신뢰해야 하는 것이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창 48:21)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창50:24)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물리치거나 귀찮아 하지 않으시고 항상 진지하게 대해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부탁하는 내용이 있다.
말씀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5-17)
말씀이 든든히 세워 줄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씀은 우리들을 든든히 세워 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가는 근본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신8:2,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일부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바로 우리들이 보고 있는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의 말씀이 특이한 것은 말씀이 바로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생명이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6:68)
주님이 바로 우리들의 영생의 말씀이다.
우리가 말씀을 보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소유하고자 함이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본문을 해석하지 말라. 본문이 당신을 해석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듣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사람들을 세운 것은 섬김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본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에 주님께 받은 것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능력에 맞는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에 맞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들이 사람들을 섬기는 것 역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가리키기 위함이다.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신뢰해야 하는 것이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의 주요 책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면서 끝을 낸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24-26)
이 말은 우리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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