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1:5)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인 느헤미야는 자신의 동생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형편은 그렇게 좋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현대인의성경]느 1:3
그러자 그들은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그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채 그대로 있고 성문은 불탄 이후로 다시 세우지 못했다고 말해 주었다.
성전은 스룹바벨 등에 의하여 재건되었지만, 아직도 성벽은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직도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의 상황 들에 대하여 잠깐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BC 1050년 사울이 초대왕으로 올랐고, 931년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722년 앗수르에 의하여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였다.
그후 586년 바벨론에 의하여 남유다도 멸망하였다.
586 남왕국 유다의 함락 < 3차 포로 > 예루살렘 함락, 바벨론 포로가 됨(왕하 25:8) (대
하 36:17),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 구년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왕하25:8-10)
이들의 멸망은 하나님의 힘이 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0-13)
하나님이 우리들의 죄에 대한 심판은 우리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살리는 것이다. 우리들을 죽이는 것이라면 죄에 대하여 눈감아 주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시다면 우리는 죽게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이 이렇게 악함에도 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에 대한 용서이지 죄에 대한 눈감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사랑인 것은 우리의 죄를 눈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때문에 그 분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사랑이시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3:12)
하나님이 우리들을 대하시는 것은 사랑이 밑바탕에 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13:6)
야고보는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여기서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는 것은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는 변함없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변함없이 우리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 모든 역사를 계획하고 계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포로생활에서 해방 시키시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낸다.
538 고레스의 1차 귀환 조서 (대하 36:23)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 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9:1,2)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대하36:22,23)
537 1차 귀환 (스 2:1) < 스룹바벨 >
536 성전 재건 작업 1차 시작 (스 3:8), 성전 재건 작업 1차 방해, 중단(스 4:4-23)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지 이년 이월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 온 자들이 역사를 시작하고 이십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스3:8)
522 다리오의 바사왕 즉위
520 성전 재건작업 재개 (스 5: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 들이 함께 하여 돕더니(스5:2)
516 제 2성전 완공 (스 6:15)
다리오 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스6:15)
486 아하수에로의 바사 통치 479 왕후로 간택된 에스더 (에 2:17)
465 아닥사스다 I의 바사 통치
458 2차 귀환 조서 (스 7:11), 2차 귀환 (스 7:9) < 에스라 >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년 오월이라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7:8-10)
444 3차 귀환 < 느헤미아 > (느 2:9-11), 성곽 중수 필역 (느 6:15)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느6:15)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먼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역사를 이룸에 있어서 사람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에서 느헤미야는 아직도 어려움에 있는 자신의 고국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슬퍼하였다.
그는 상황을 알았을 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의 시작은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말씀과 기도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과 뜻대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1:5)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크고 두려우신 분은 맞지만, 긍휼을 베푸시는 분임을 알았다.
베드로가 자신의 생각에 어의없다고 여긴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기도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궁금해진다. 가룟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면 어떠했을까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찾는 다는 것이 바로 회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왕상21:27-29)
사람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지 않았기에 죽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단9:18-19)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저희는 육체 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시78:38,39)
우리가 기도를 하는 이유도 하나님이 우리들을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은 우리가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함도 알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어려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어떻게 이끌어 가고 있음도 알았다.
그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기도를 시작하였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일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 첨부
- 문서정보
- • URLhttp://miblove.com/37251
- • Date2010.01.22 23:50:57
- • Reads / Votes726 / 0
- • Trackbackhttp://miblove.com/index.php?document_srl=37251&act=trackback&key=d84
- 이 게시물을...
- SNS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1396 |
산 자의 하나님(추도예배)
| 2010.02.02 | 376 | |
| 1395 |
광풍속에서(주일예배)
| 2010.01.31 | 322 | |
| 1394 |
자복과 용서(금요기도회)
| 2010.01.30 | 321 | |
| 1393 |
성경(수요예배)
[1] | 2010.01.27 | 908 | |
| 1392 |
하나님 이름(주일예배)
[1] | 2010.01.24 | 700 | |
| » |
긍휼(금요 기도회)
[2] | 2010.01.22 | 726 | |
| 1390 |
비전(수요예배)
| 2010.01.20 | 348 | |
| 1389 |
더 넘치도록(주일예배)
| 2010.01.17 | 389 | |
| 1388 |
사랑하심을 인하여(금요기도회)
| 2010.01.15 | 344 | |
| 1387 |
은혜 가운데(수요예배)
| 2010.01.13 | 362 | |
| 1386 |
생각들(주일예배)
[1] | 2010.01.11 | 631 | |
| 1385 |
나의 하나님(신년기도회3)
| 2010.01.09 | 403 |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심판하시는 것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