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행19:21)
바울은 제3차전도 여행을 떠났다. 에베소에 도착하여 어떤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가르쳐 준다.
그리고 바울은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19:8-10)
말씀에 대한 확증은 이고니온에서 있었던 것처럼 주님의 증거가 있었다. 이것은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이 들어간 자리가 그러하듯이 사람들은 주님을 좇는 사람도 있었고 주님을 내쫓는 사람도 있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행14:3,4)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을 따르는 것이다. 자기 부인이 아니라는 것은 자기를 따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강한 자는 자기를 이기는 자라고도 한다.
자기를 이긴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말씀이 힘을 얻어 흥왕해지자, 예수님을 대적하는 대신에 흉내를 내는 자들이 생기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귀신들을 쫓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귀신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쫓고 있는지, 아니면 흉내만 내고 있는 지를 알고 있었다.
스게와의 일곱아들들도 그렇게 하고자 했지만, 귀신에게 역으로 당하고 도망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되었다.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행19:15)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행19:16-19)
그리고 그들은 믿음에 방해되는 책들을 가지고 나와서 불살랐다. 그 가격이 오만 드라크마, 즉 오만 데나리온이 되었다. 지금의 시세로 치면, 35억정도 될 것이다.
이러한 이들이 있은 후 바울은 한 가지 계획을 세운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행19:21)
로마로 갈 비전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비전을 가진 후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에 의하여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행19:23-24)
[현대인의성경]행 19:24
거기에 데메드리오라는 은세공인이 있었는데 그는 은으로 아데미 여신의 모조 신전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돈벌이를 하게 하였다.
하지만, 불법적인 그들의 집회는 해산을 하게 되고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게 되었다.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행20:41-20:1)
바울은 로마로 가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로마로 가고자 했던 것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떠오르는 구약의 인물이 있다.
바로 요셉이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창37:9-11)
요셉이 꾼 꿈은 이루어지는 꿈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요셉을 통하여 이루실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그릇을 만드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일이었다.
하나님의 은혜 중의 하나는 선물을 주시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선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는 것이다.
요셉은 17세에 이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그 꿈의 이루어짐의 시작은 30세에 시작되었다. 바로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시105:17-19)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였지만, 노예 생활을 10년이상 버티어야 했다.
요셉이 바라보아야 했던 것은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들 단련시키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6-7)
요셉의 꾼 꿈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의 나라가 높이 들림을 받았음을 앎이었더라 (대상14:2)
그는 모든 사람을 받아 줄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45:7,8)
비록 형들을 통하여 자신의 시련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이 자신을 통하여 이루실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 역시 로마로 가고자 하는 꿈을 가졌다.
그것은 바울이 자신을 높이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완수하기 위함이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그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로마로 가게 되었다.
[표준새번역]행 27:1
우리가 배로 이탈리아에 가야 하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에, 그들은 바울과 몇몇 죄수를 황제 부대의 백부장 율리오라는 사람에게 넘겨 주었다.
그는 일단은 죄수의 신분으로 가게 되었다. 신분은 죄수였지만, 276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2-25)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꿈을 주실 뿐 아니라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가신다.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롬9:23)
결론적으로
바울의 비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고,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했고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이 되었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은 비전을 주셨다.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으로 살고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준 비전은 하나님이 그것을 능히 이루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것을 능히 담을 만한 그릇으로 만들어 가실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하나님과 함께 살기로 했으면, 롤러코스터가 출발하기 직전에 안전벨트를 매는 것처럼 안전벨트를 매고, 하나님의 역사를 지켜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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